[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치솟는 물가를 어쩌면 좋을까. 3월 물가가 1년 새 4.7% 치솟았다. 금융위기 원년인 2008년 10월 이후 29개월 사이 최고치다. 농산물과 석유류를 뺀 근원물가도 3.3% 올랐다. 역시 2009년 8월(3.1%)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지난 1분기 물가는 1월 4.1%, 2월 4.5%, 3월 4.7%. 한 번도 3%대로 내려선 일이 없다. 한국은행의 물가관리 목표치(3±1%)나 정부의 연간 물가 전망치를(3% 내외) 들이대는 건 이미 머쓱한 일이 돼버렸다.
경기회복기 물가 인상은 예고된 일. 금리 인상을 미루는 사이 일이 꼬이기 시작한 건 지난해 가을부터다. '배추 파동'때 푸성귀 값을 잡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뒤이어 한파에 구제역이 겹치며 장바구니 물가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은 중동의 정국 불안은 대형 악재였다. 물가에 큰 영향을 주는 국제유가에 불을 붙였다. 리비아 군사충돌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지난달 31일 두바이유 현물 거래가는 배럴당 0.68달러(0.62%) 오른 109.40달러를 기록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도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배럴당 106.72달러까지 올랐다. 2008년 9월 이후 최고치다.
당국자들의 입술은 바싹 말라있다. '비상물가대응체제'를 선포하고 매주 기획재정부 1차관이 물가안정대책회의를 열고 있지만, 약발이 먹히질 않는다. 과녁 정중앙에 내걸었던 기름값 문제도 좀체 매듭 짓지 못하고 있다. 조만간 정부의 석유제품가격 태스크포스팀(TFT)이 조사 결과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가격 인하를 종용할 문제점은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나온 대안이 정유업계의 '원적지 관리'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정도다.
시장에선 '3월 물가가 5%를 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냉소가 흘러나온다. 심리적인 저지선을 방어한 데서 위안을 찾는다는 얘기다. 물가를 5% 아래로 누른 힘은 환율에서 찾는 게 합리적이다. 증시에 외국인 자금이 몰려 환율이 떨어지면서 원화강세가 나타났고, 덕분에 원유 등 원자재 수입 부담을 다소 덜 수 있었다.
지난달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공격적인 순매수세를 보였다. 3월 16일 5억원 순매수를 시작으로 17일에는 1195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이후 31일까지 외국인들의 누적 순매수 규모는 2조9336억원에 이른다.
증시에 외국인 자금이 몰리면 자연히 환율은 떨어진다. 덕분에 지난달 31일 원달러 환율은 1096.7원까지 내려서 2008년 9월 12일 이후 30개월 만에 1100원선이 무너졌다.
환시에서는 물가 부담에 정부가 백기를 든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성장에 치중해 고환율을 고집하던 정부가 환율 하락을 용인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원화 가치가 오르면 수출에는 불리하지만, 달러화로 값을 매긴 원유 등 원자재를 들여오는 비용 부담이 준다. 환율 하락은 수입물가를 잡는 즉효약인 셈이다.
한편 첩첩산중인 물가 여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농축수산물의 가격이 높게 유지되는 가운데 유가 상승 등 공급측 충격이 컸다"는 분석을 내놨다. 재정부는 아울러 "근원물가와 개인서비스 요금 상승폭이 커지는 등 수요 측면의 물가압력도 나타나고 있다"면서 "앞으로의 물가는 유가 등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있지만 4월 이후 서서히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종원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4월 이후엔 농산물 공급이 정상화되고, 구제역이 진정돼 농축산물 가격을 중심으로 가격 하락세가 나타날 것"이라면서 "일각에서 제기하는 거시경제목표(5% 성장, 3% 물가) 수정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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