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내신 10등급, 변호사 꿈 이루기 위해 1년만에 사시합격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 오주연 기자] 프로선수가 구단이나 대기업과 연봉계약을 할 때 선수에게 최대의 이익을 확보해주기 위해 계약 테이블에 나서는 사람이 있다. 잠재능력을 파악해 선수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부터 계약 때 법률 서비스까지 도움을 주는 이들은 스포츠 에이전트(sports agent)다.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 등장한 스포츠 에이전트를 보며 '공익 엔터테인먼트 변호사'라는 직업을 생각해낸 김효정 변호사(33). '야구'를 무척 좋아하다보니 야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지게 됐고, 그들을 돕기 위해 공익 엔터테인먼트 변호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다. 스스로 가지고 있던 '변호사'의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와 접목시킨 김 변호사를 만나 '창의적 직업'이란 무엇인가를 들어봤다.
'의사가 되고 싶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 얘기하는 친구들을 보며 '왜 나는 저런 꿈이 없을까' 고민하던 학창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변호사'는 법정에서 변호만 하는 직업이란 고정관념이 강해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뚜렷하게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꿈이 없다보니 공부보다는 좋아하는 스포츠와 록 음악에 빠져들었다. 야구 보는 걸 누구보다 좋아했지만 야구선수가 될 수는 없었고, 록 음악을 귀에 달고 살았지만 가수가 되는 것도 꿈꾸지 못했다. 대학에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스포츠와 음악을 좋아하는 만큼 그들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야구경기를 보면서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애정을 가지게 됐고, 스포츠 선수들이 연봉계약을 할 때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거나 방출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구단이나 한국야구위원회(KBO) 같은 단체에 비해 힘이 없는 약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특히 예술가들은 소속된 단체도 없을 뿐 아니라 4대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수와 예술인에 대한 애정은 스포츠와 예술 분야에서 소외되고 약자의 위치에 있는 그들을 위해 법률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런 생각이 들자 변호사는 더 이상 법정에만 갇힌 사람이 아니었다. 야구선수와 손잡고 협상장에 들어가고 가수나 연극배우, 시나리오 작가와 상담하는 변호사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됐다.
그녀에게 이루고 싶은 꿈이 생기자 꿈을 성취할 수 있는 힘도 생겨났다. 김 변호사는 학창시절 내신 10등급을 오가는 수준이었지만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독해졌다. 밤을 낮 삼아 공부한 끝에 이화여대 통계학과에 99학번으로 입학했다. 수능을 잘 본 탓이다. 스포츠 에이전트를 꿈꾸면서 25살에 도전한 사법시험은 3개월 만에 1차에 합격하고, 8개월 만에 2차를 통과해 47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단기간의 합격이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말하는 김 변호사는 빠른 합격 후 “원래 똑똑한 게 아니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원래 똑똑했다면 중·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똑똑했을 것”이라며 마음을 먹으면 곧바로 실천하는 스타일이어서 힘든 수험생활을 단축할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김 변호사는 사법고시를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바로 다음 날, 서점에 가서 책부터 샀다. 당시 신림동에 위치한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그는 낮에는 공부를 하고 밤에는 스터디를 하면서 1차 시험을 준비했다. 준비기간이 짧은 만큼 공부에 몰두했던 그는 시험 보기 전날 기절해 시험장에 들어가지도 못할 뻔했다.
1차 시험 후 떨어졌다고 생각한 그는 학원강사로 일하며 지내다 2차 시험 날이 되어서야 1차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첫 해 2차 시험기회를 날려버린 뒤 다시는 놓쳐선 안 된다는 절박함에 더 치열하게 공부에 매달렸고, 8개월 만에 최종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도 그의 다른 행보는 계속됐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사법연수원에 들어가기 위한 면접을 보게 된다. 이때 대부분의 연수원생들이 판사, 검사, 로펌 변호사 순으로 희망진로를 적어낸다. 그런데 김 변호사만 '공익 엔터테인먼트 변호사'라고 적어냈고 결국 면접관에게 '도대체 공익 엔터테인먼트 변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질문을 받게 됐다.
김 변호사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꼭 해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스포츠인과 예술인이 대등한 관계에서 협상할 수 있도록 돕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말과 함께.
김 변호사는 재판장만이 그녀가 활동할 수 있는 무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2월 생활고 끝에 숨진 채 발견된 고(故) 최고은 작가 사건을 계기로 트위터를 통해 문화예술인을 위한 복지 법안을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현재 재단법인 동천과 로스쿨 학생들이 운영하는 '젊은 예술가의 날개'라는 블로그에 로스쿨학생들을 지원해주고 있다. 이런 활동은 스포츠 분야로도 넓혀 선수들이 구단과 협상할 때 법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그녀처럼 좋아하는 분야와 '변호사'라는 직업을 융합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면 어떤 방법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일까. 김 변호사는 “나도 학창시절에는 늘 꿈이 없다고 말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너는 좋아하는 게 뭐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내가 가진 재능을 찾아낼 수 있게 도와주는 멘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어떤 직업이 필요한지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꿈이 없다고 해서 평생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 꿈이 없다고 조바심 낼 필요도 없다. 그 역시 25세에 구체적으로 '공익 엔터테인먼트 변호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변호사 시험을 준비했다. 그 전까지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원강사로 5년간 일했다. 그가 학원강사로 일하는 동안 친구들은 대기업에 취직했다. 당시엔 스스로 뒤처진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서른을 넘기니 회사를 그만두는 친구도 많아졌다.
김 변호사는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만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애정이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되고, 현재 그 일을 다루는 직업이 없다 해도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면 된다는 것이다. 스포츠와 예술을 법률과 접목해 자기에게 딱 맞는 직업을 만들어낸 그처럼 말이다.
이상미 기자 ysm1250@
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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