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는 수도 아바나에 유일하게 9홀짜리 아바나골프장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피엘 카스트로가 "골프는 부르조아의 산물"이라고 단정짓고, 기존 골프장을 모두 군사학교나 예술학교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쿠바가 1962년 구 소련에게 미사일기지를 허가해 소련의 미사일을 탑재한 배가 쿠바 인근까지 온 적이 있다.
카스트로는 이 때문에 감정이 몹시 상한 존 F. 케네디 미국대통령을 초청해 체 게바라와 골프를 치기로 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이 응하지 않았다. 게바라와 어쩔 수 없이 둘이서 골프를 쳤고, 내기에서 진 카스트로가 자존심이 상해 골프장을 폐쇄해 버렸다는 후문이다.
멕시코의 휴양도시 칸쿤에서 쿠바항공편으로 아바나에 도착하니 군복을 입은 입국관리요원이 근엄하게 심사를 하는데 가슴이 두근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향하는 차창으로 내다본 쿠바는 미국의 강력한 경제 제재로 1950년대의 낡은 도시에 거리는 황폐해 있었고, 시민들의 얼굴 역시 무표정하고 웃음이 없어 보였다.
김일성대학 출신의 평양사투리를 쓰는 쿠바 가이드는 우리를 아바나골프장으로 안내해 주고 우리와 함께 라운드할 캐디를 소개시켜주었다. 대여채를 받으니 구식 윌슨 드라이버에 아이언은 링스와 스팔딩이 반반이다. 퍼터는 그나마 상표도 없는 철제 퍼터다. 1번홀 거리와 핸디캡을 알려주는 야디지보드는 하도 오래돼 잘 보이지도 않는다.
1961년에 재개장했는데 파36, 3011야드 규모다. 설계는 미국의 윌리엄 에밀에 의해 완성되었다. 코스는 전반적으로 평탄하고 약간의 언듈레이션만 있을 뿐 워터해저드도 적고 곳곳에 페어웨이 벙커만 있을뿐이다. 그린이 작아 파온은 그러나 쉽지 않다.
검은 얼굴을 한 캐디와 함께 1번홀에서 티샷을 하고 페어웨이로 나가 보니 키 큰 팜트리와 각종 아열대 꽃들이 피어있고 새들의 합창이 먼데서 온 골퍼를 환영해 준다. 페어웨이는 물론 잔디 반 모래 반일 정도로 관리가 허술하다. 그린은 빈대떡만한데 역시 관리가 엉망이어 세게 때려야 겨우 공이 굴러간다.
캐디에게 거리가 얼마냐고 물어보면 무응답에 그저 클럽을 건네준다. 서비스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팜트리 기둥에다 칼로 파서 거리표시를 한 것이 이색적이다. 쿠바인처럼 몬테크리스토와 코히바 시가를 입에 물고 라운드를 하니 독한 담배연기가 폐를 자극해 플레이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2시간반을 걸어서 라운드를 마치고 나니 목이 칼칼해 헤밍웨이가 하루에 10잔씩 즐겨마셨다는 3년산 럼주에 설탕 반스푼, 라임과즙을 넣어서 제조한 모히토를 한 잔 마셨다. 취기가 올라 정신이 몽롱하다. 돌아오는 길에 사회주의 혁명의 함성이 깃든 혁명광장을 지나니 쿠바 민요 '관타나메로'의 생음악연주가 어깨를 들썩들썩하게 만든다. 쿠바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18홀짜리 바라데로골프장을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글ㆍ사진=김맹녕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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