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그럼 설 연휴에도 나와 회의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지난 7일. 부처합동 물가안정대책회의에 참석하는 한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날 기사 중 한 대목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기사에는 "설 연휴가 겹쳐 2월 첫 주 회의는 쉬었다"고 언급돼 있다. 연휴에 회의가 열리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일. 그런데도 이 관계자는 "'회의도 하지 않고 놀았느냐'로 들려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뒤집어 생각하면 '물가잡기'에 정부 관계자들이 얼마나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성격은 좀 다르지만, '물가'에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는 건 과천(기획재정부)이나 서초동(공정거래위원회)이나 마찬가지다.
요사이 재정부 관료들과 식사하며 물가 얘기를 꺼내는 건 '금기'에 속한다. 주무 국·과를 떠나 "물가의 '물'자만 들어도 물린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실무자들은 "지난해 11월부터 한 주 걸러 한 주 꼴로 대책을 내놔 이젠 정말 내놓으려야 내놓을 카드도 없다"면서 "여론은 즉효약을 원하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푸념했다.
언론이 물가불안을 부풀리는 게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물가 정책 재탕, 삼탕을 비판하지만, 한 얘길 또 하고, 또 하는 건 오히려 언론이 아니냐"며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할 만큼 하고 있는데 속사정을 너무 몰라준다는 '민원'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가격에 영향을 주는 대책은 원래 효과를 보는 데 시간이 걸리는 법인데 설 전후 체감 물가가 높다보니 분위기가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의 설 대책은 큰 힘을 쓰지 못한 것 같다. 농축수산물 공급량을 늘리고, 공산품의 관세를 낮추는 등 갖은 처방을 내놨지만, 설 직전 주요 생필품 가운데는 값이 뛴 품목이 더 많았다.
한국소비자원 통계를 보면, 79개 생필품 가운데 1월 3주보다 4주 판매가격이 높았던 품목이 42개(53.2%)였다. 비교 품목 중 절반 이상은 가격이 올랐다는 의미다. 값이 떨어진 품목은 32개(40.5%)에 그쳤다.
공정위의 물가 부담은 약간 성격이 다르다. 신임 김동수 위원장 취임 직후 '물가관리 기관'임을 공언했지만, 행정력으로 기업들을 압박해 물가를 틀어쥐려 한다는 시선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9일부터 시작되는 위원장과 유통, 건설, 15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간담회에서 물가 얘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유통업체들을 만난다고 하니 가격 인하 압력을 주는 게 아니냐는 오해가 있는데 이번 간담회는 미뤄둔 상생 논의를 하기 위한 자리"라면서 "물가 얘기는 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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