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안혜신 기자] 재정적자로 시름하고 있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이번에는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까지 금리인상에 미온적이었던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연일 "인플레이션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매파적 발언을 던지고 있다. 이에 따른 유로존 출구전략 시행 가능성 역시 점차 커지고 있는 상태다.
지난달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2%로 ECB 목표치 2%를 웃돌았다. 이는 2년여 만에 최고 수준이기도 하다.
유로존 CPI 급등은 전례 없는 폭설과 혹한이 이어지며 난방비 등 에너지 비용이 크게 오른데다 전 세계적인 식품가격 상승까지 겹쳐진 여파가 크다. 여기에 지난해 이 지역 재정적자 우려로 인해 유로화 가치가 바닥까지 떨어지면서 수입비중이 큰 식품·에너지 등의 가격 상승이 한층 더 가팔랐다는 분석이다.
물가 상승 지속 전망이 이어지자 트리셰 총재는 금리인상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27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유로존에서 강해지고 있는 인플레이션 압박을 주시해야만 한다"면서 "일부 국가 경제가 재정적자에 시름하고 있지만 향후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로존이 당장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낮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기침체다. 경기침체 속에서 무리하게 금리인상을 단행할 경우 이는 소비심리 위축을 불러 간신히 회복세를 보이던 경기가 재침체(더블딥)에 빠지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유로존 재정적자 우려는 여전히 시장에 깊게 남아있다. 영국은 지난해 4분기 충격의 마이너스 성장(-0.5%)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달 3.7%라는 높은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던 영국은 다시 한번 금리인상을 미룰 수밖에 없게 됐다.
구제금융 임박설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포르투갈과 저축은행 부실 등은 물론 재정적자 감축과 씨름하고 있는 스페인 등 재정불량국 상황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크레디트 아그리꼴(CA)은 ECB가 내년 3월에나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시장에 유로존 긴축정책 시행 기대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CA는 ECB가 현재 1.0%인 기준금리를 내년 3월 1.5%로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장기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것도 ECB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치솟는 물가를 끌어내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금리인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ECB가 연내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의견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프란시스코 가자렐리 골드만삭스 투자전략가는 ECB가 올해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됨에 따라 ECB는 올해 4분기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이터통신이 지난 27일 82명의 이코노미스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도 비슷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 참여자의 절반이 ECB가 올 4분기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이라고 답했다.
안혜신 기자 ahnhye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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