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달중 기자] "참 슬프다. 도지사직을 잃어서 슬픈 게 아니라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눈물이 난다."
대법원의 판결로 지사직을 잃은 이광재 강원도지사는 27일 기자회견에서 잠시 말을 잊은 채 천장을 응시했다. 두 눈에 고인 눈물을 애써 감추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도지사로서의 마지막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강원도를 '변방'에서 '중심'으로 만들겠다던 야심찬 그의 계획도 이제 접어야 한다.
이 지사는 이날 도지사직 상실소식을 오대산에서 전해 들었다고 한다. 오대산은 그가 힘들 때마다 찾았다고 한다. 그는 이날 연가를 내고 몇몇 측근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 대신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는 그의 부인과 지지자들이 동행했다. 이 지사의 부인은 대법원의 선고에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자 손수건으로 연신 닦았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무슨 말이 필요하냐"며 말을 아꼈다. 같은 시각 민주당 영등포 당사는 안타까운 탄식 소리가 들렸다. 텔레비전을 통해 이 지사의 소식을 듣자 일부 당직자는 눈물을 훔쳤다.
이 지사와 검찰과의 악연은 정치권에서 회자될 정도로 질기고 모질다. 6번의 검찰 수사와 특검에서도 오뚝이처럼 살아남았던 그에게 '박연차 게이트'는 행운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정치인생 23년. 그는 이제 '야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강원도 평창의 산골소년이 여의도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1988년 당시 노무현 의원의 보좌진으로 채용되면서다. 노 의원과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그는 2003년 참여정부의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으면서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함께 '좌 희정, 우 광재'로 불렀던 것도 이때부터다.
정계진출을 결심한 그는 2004년 자신의 고향인 태백ㆍ영월ㆍ평창ㆍ정선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18대까지 연거푸 당선됐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보수성향이 뚜렷한 강원도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도지사에 당선된 것은 이변이었다. 천안함 사건으로 정치지형상 불리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극적인 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이 지사의 한 측근은 "당시 강원도에서는 이 지사를 도 출신의 첫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이 지사가 야권의 차세대 주자로 거론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40대 최연소 도지사라는 기록과 함께 취임 7개월 만에 도지사직을 읽은 불명애도 남게 됐다. 무엇보다도 향후 정치 일정이 불투명하다는데 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향후 10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돼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저를 자식처럼 생각하는 도민들이 있는 만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모진 바람에 가지가 꺾여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태백산의 주목처럼 의연하게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동갑내기이자 이 지사의 정치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절친'인 안희정 지사는 트위터를 통해 "넘어지고 자빠져도…다시 일어나. 당당하게 살아남자"고 그를 위로했다.
김달중 기자 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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