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1000만 흥행' 이준익 감독이 2003년 전국 300만 관객을 모은 흥행작 '황산벌'의 속편 '평양성'을 들고 돌아왔다.
'평양성'은 그간 '왕의 남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등을 연출하며 사극영화의 달인으로 등극한 이준익 감독이 발상의 전환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황산벌'을 8년 만에 부활시켰다는 점만으로도 눈길을 끈다.
'평양성'은 '황산벌'과 속편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점도 있지만 전혀 다른 영화이기도 하다. 단지 제작비와 스펙터클의 규모가 커지고 등장인물이 다양해졌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평양성'이 '황산벌'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시종일관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사회정치상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평양성'은 '황산벌'에서 백제를 패망시킨 신라가 8년 뒤인 668년 나당연합군으로 고구려와 맞선 평양성 전투를 그린 작품이다. 역사 속 고구려는 장기집권한 연개소문의 사망으로 정치적 혼란이 일고 신라·당나라의 공격 속에 국력이 바닥에 이른 상태였다.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는 신라에 투항했고 장남 연남생은 당나라에 백기를 들고 고구려 패망에 일조했다. 연개소문의 둘째아들 연남건은 27만 신라군, 50만 당나라군의 연합 공격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외세의 힘을 빌린 불완전한 삼국통일이었다.
'황산벌'에서 '평양성'까지 이준익 감독의 작품을 관통하는 요소 중 하나는 역사 뒤집어 보기를 통한 권력 비판이다. ‘황산벌’에서 이준익 감독은 역사에서 소외됐던 여성과 민초의 시각을 빌려 남성 중심적이며 지배층 중심적인 역사 해석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준익 감독은 '평양성'에서도 민중의 시선을 통해 권력과 전쟁에 대해 비판한다.
'황산벌'과 '평양성'에서 전쟁터라는 광장은 비판의 탈을 쓴 풍자와 해학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심각하고 현학적인 수사법 대신 유머러스한 풍자와 패러디를 사용해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선다.
'평양성'은 여기에 가상의 판타지를 더했다.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패망시킨 것이 아니라 신라와 고구려가 힘을 모아 당나라를 내쫓았다는 것이다. 현재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은유는 이 같은 판타지를 유연하게 만든다.
신라는 식량난에 빠진 고구려를 돕기 위해 쌀가마를 쏘아 보내고, 고구려는 이에 분노해 동물들을 쏘아 보낸 다음 식량창고에 불을 지른다. 남북간의 긴장관계를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치환했다. 또 연개소문의 두 아들 남생(윤제문 분)과 남건(류승룡 분)의 갈등과 대립은 김정일의 두 아들 김정남과 김정은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고구려 포로가 된 거시기(이문식 분)가 확성기를 통해 김유신(정진영 분)을 비난하는 장면도 정치적인 은유가 담겨 웃음을 준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남겼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된 한 시민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현실과 달리 김유신은 "맞는 말이네"라고 수긍한다.
'평양성'은 날카로운 비판에 집중하기보다 웃음을 통해 희망을 전하려 애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같은 특징은 더욱 강하게 부각된다. '황산벌'보다 훨씬 정치적인 풍자가 강조된 '평양성'이 전편의 흥행을 넘어설 수 있을까. 27일 개봉한 '평양성'은 첫날 6만 관객을 모으며 설 연휴 극장가를 공략할 채비를 마쳤다.
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 k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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