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가시는 장미 줄기에만 있는 게 아니다. 말과 글에도 가시가 있다. 가시는 잘못 만지면 제 몸에 생채기를 내지만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
전세난이 심각하다. 심각하다는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중병이 들었다. 쉽게 치유되기 어려울 것 같다. 강남권에서 시작된 전세난은 '전세난민'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문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각종 대책들이 쏟아지면서 수습되기야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서민들은 선혈이 낭자한 전쟁터를 경험할 수 밖에 없다.
목동에 사는 A씨, 반포에 사는 B씨, 신당동에 사는 가장 C씨는 그나마 이름 대면 알만한 직장에 다닌다. 그러나 그들도 1년에 1000만~2000만원 모으기가 버겁다. 자식 키우며 5년 안팎을 꼬박 모아도 만질 수 없는 돈을 한몫에 털어넣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대출받을 신용이라도 되는 걸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하나.
이들보다 어려운 단칸방, 반지하 이웃들에게 불어닥칠 게 뻔한 전세, 월세난은 그럼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국지적이기는 하지만 강남ㆍ송파 등지에서 시작된 전세난은 분당, 목동 등을 거쳐 강북과 수도권 일대에까지 번지고 있다. 과거 집값이 폭등할 때 나타났던 도미노 현상처럼 말이다.
전세난의 가장 큰 책임은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정부 당국에 물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는 부동산 시장에 대폭락론을 들고 나와 기름을 끼얹은 소위 '시장 전문가'에 대한 안타까움도 숨길 수 없다. 시장에 저주를 퍼붓듯 쏟아낸 대폭락론은 매기(買氣)를 더욱 얼어붙게 했다. 집값 폭락에 대한 불안심리는 커졌다. 비정상적인 시장에서 생긴 부작용은 결국 전세난으로 이어졌다.
정보의 선택, 선택에 따른 판단은 개인이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하지만 말과 글로 이름을 알리고 그가 가진 식견으로 밥벌이 하는 사람들은 위세가 커질수록 내뱉는 말에 신중해야 한다. 그 댓가는 고스란히 전셋집을 찾아 헤매는 우리들이 지고 있다.
김민진 기자 asiak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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