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용두사미(龍頭蛇尾). 너무 흔한 사자성어지만 작년 3DTV 전망 및 실판매량을 보면 이보다 더 딱 들어맞는 표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작년 초만 해도 '아바타' 열풍을 타고 금방이라도 집집마다 거실에는 3DTV를 보기 위해 3D전용안경을 쓰고 있는 가족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처럼 업계가 ‘신기술’의 발전을 극찬했습니다. 막상 결과는 과장된 표현을 써서 ‘업계만의 착각’으로 끝났습니다.
작년에 판매된 3DTV는 320만대였습니다. 그나마 삼성전자의 적극적인 글로벌 마케팅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40인치 이상급 TV의 4%에 불과합니다.
최근 시장조사업체인 디스플레이서치의 한 애널리스트가 3DTV 판매부진에 대해 평범한 내용이지만 송곳 같은 지적을 했습니다.
“TV는 콘텐츠를 보기 위한 도구이다”
이 한마디는 3DTV업계의 주변 환경을 고려치 않은 기술력 과시를 꼬집은 것이자 TV 본연의 기능을 잠시 외면한 채 앞선 기술만으로 소비자를 유혹한 것에 대한 일갈입니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작년에 3D영상물은 불과 40편에 불과합니다. 모든 장르를 통틀어 40편이니까 편당 러닝타임을 1시간 30분으로 가정할 경우 모든 3D제작물을 섭렵하더라도 3DTV 활용가치는 연간 60시간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지금 미국 가정 중 약 3분의 2에는 LCD, PDP 등 평판TV가 보급돼 있습니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가정은 대부분 평판TV를 거실에 두고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보유 TV 외에 3DTV를 추가구매하거나 교체시에 3DTV에 매력을 느껴야 하는데 콘텐츠가 40편에 불과한 점에 소비자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3DTV는 올해 1800만대가 팔릴 것으로 디스플레이서치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3D영상물이 풍부하지 않은데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전자업체들이 40인치급 이상에는 3D와 스마트기능을 의무적으로 탑재할 것이 유력시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으로 세계 IT물결을 좌지우지하는 애플도 3DTV보다 더욱 철저한 실패를 경험한 바 있습니다.
PC매거진은 지난 2008년 애플이 실패한 11가지 기술을 소개한 바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는 수년이 지난 후 애플 최고 히트작의 모태가 됐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1993년에 출시된 뉴톤이라는 PDA입니다. 상당히 매니아적 기술이 접목돼 있어 당시 소비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최근 아이폰이 바로 뉴톤의 후속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 같은 해 나온 매킨토시TV는 IPTV의 전신입니다. 당시 소니와 합작으로 진행됐지만 너무 앞선 기술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은 바 있습니다.
3DTV가 실패작이라고 주장하거나 소비자로부터 외면받는 기술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앞으로 TV의 변화를 이끌어갈 시대적 기술 중 하나라고 개인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세계 무대를 휩쓸고 있는 한국 전자업체들이 “TV는 콘텐츠를 보기 위한 도구”라는 점을 한번쯤 곱씹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자동차에 IT기술이 접목된다고 해서 본연의 기능인 엔진성능을 소홀히 한 채 최첨단 IT기능을 탑재한 신차를 출시해봐야 소비자는 냉혹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겠죠.
“에어컨에 차를 끼워 판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브랜드마저 사라진 모 자동차 회사가 엔진 성능이 시원치 않은데도 차에 달린 에어컨은 모든 자동차 회사 중 최고 성능을 자랑하자 소비자들은 이같은 냉소적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농담으로 결코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겠죠.
박성호 기자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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