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아시아 각국에서 식품가격이 급등해 물가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가운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음식에 빠지지 않는 양념인 칠리고추 가격이 폭등해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주 UN 식량농업기구가 2007~08년 식량대란을 능가하는 전 세계 '식품물가쇼크'를 경고한 가운데 8일 시드니모닝헤럴드 등 외신은 올해 들어 인도네시아 칠리고추 가격이 1kg당 11달러까지 올랐다고 보도했다. 이는 보통 가격의 4배로 닭고기 가격보다도 비싸진 것이다.
칠리고추 가격이 급등한 것은 지난해 10월 머라피화산 폭발에 이어 최근 때 아닌 집중호우로 작황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묵은 칠리고추까지 1kg당 3달러 이상 호가하면서 식품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물가상승률은 6.9%로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이 설정한 목표치 4~6%를 이미 뛰어넘었다. 물가상승의 최대 원인은 지난해 15.6% 가까이 치솟은 식품물가다. 전체 인구의 절반 인상인 1억3000만명이 하루 2달러 미만 수준의 생활비로 살아가며 지출의 40%를 식품에 쓰는 인도네시아에서 식품가격의 상승은 민생 안정을 가장 위협하는 원인이다.
특히 칠리고추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식탁에 없어서는 안 될 재료다. 전 인도네시아 농업부 장관을 지낸 농업 이코노미스트 H.S.딜론은 “쌀은 없으면 다른 것으로 대신하면 되지만 칠리고추는 대신할 것이 없다”면서 칠리고추 파동으로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칠리고추 가격 상승으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 등 온라인에는 이를 성토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길거리 가판에서 음식을 파는 영세상인들도 줄어든 수입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지지율이 급락하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집집마다 칠리고추를 심자”면서 국가적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약 10만 가구에 칠리고추 종자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HSBC은행은 가구별 농업생산력을 높이겠다는 방안은 좋은 생각으로 보이겠지만 앞으로 정부가 올해 예정대로 유가를 인상하고 소비재와 서비스 수요가 급증할 경우 훨씬 더 큰 물가상승 위기가 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웰리안 위란토 HSBC 이토노미스트는 “정부가 칠리고추 가격 대책에 집중하는 것은 더 큰 위협을 놓치는 것”이라면서 “심각한 물가상승은 비단 식품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점증하는 인플레이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핫머니(투기성 단기자금)’ 유입 우려로 기준금리를 6.5%의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물가 안정과 자본시장 안정성의 딜레마를 놓고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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