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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39초

며칠 푹해진 날씨로 마당에 쌓였던 눈도 많이 녹았다. 추녀 끝에서 길게 꼬리를 내렸던 고드름들은 낙숫물 소리를 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스함이다.


그동안 참 많이도 추웠다. 폭설의 끝에서 만난 추위는 더욱 매서웠다. 시골로 이사를 한 후 만났던 가장 큰 눈이었고 강추위였다. 마당 끝에 선 늙은 소나무는 잎사귀에 쌓이는 눈의 무게를 못 이겨 구부정한 가지를 더욱 힘들게 누이고 눈을 맞았다. 집의 마당이나 주변 산들, 숲, 마을의 집들까지 어딜 보아도 잘 그린 풍경화 한 폭, 그만큼의 운치다. 운치가 있는 만큼 처량도 했다. 가까이서 나무를 들여다보면 잎사귀에 쌓인 눈이 등짐이 돼 많이 무거워하는 눈치다.

마을 어귀에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한 쌍의 부부 장승도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나마 띄엄띄엄 드나들던 사람도 눈 때문에 발길이 끊어졌지만 무뚝뚝한 장승 부부의 부릅뜬 눈은 여전하다. 그 풍경들 사이에서 눈발만 호들갑스럽게 흩뿌리고 때론 속삭이듯 도로에, 나뭇가지에, 지붕에 쌓였다. 눈이 쌓인 마을은 온통 고요함뿐이었다. 덩달아 마음도 고요해진다. 시골 사는 맛이고 멋이다.


그렇게 눈이 내리던 날 나는 아주 오래 전, 어릴 적 살던 마을의 풍경을 들춰 보았다. 백두대간에 있는 마을, 강원도 정선 임계란 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백두대간 길 백봉령을 넘으면 곧바로 동해안 정동진이었다. 그곳에서는 눈이 내리면 늘 폭설이었다. 어린 기억에 키보다 더 높게 내렸고 낮은 집 추녀까지도 닿았다. 때론 지붕을 넘기기도 했다.

눈 속에서 길을 내고 눈길에서 친구를 만났고 이웃을 만났다. 눈 녹인 물로 세수를 했고 소 여물을 끓였다. 눈이 생활이었고 눈이 놀이였다. 눈이 오는 날 길을 떠났던 사람들 중에는 눈밭에서 길을 잃어 귀가가 늦어지기도 했고 영영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더러 있었다. 눈 온 날 보름달이라도 뜨면 밤은 대낮보다 밝았다. 눈에 대한 어릴 적 추억들이다.


그렇게 펑펑 내리는 눈을 본 것도, 밤새 눈이 내린 날 아침 눈을 뜨고 만났던 새로운 세상, 마을은 온통 하얀 풍경이었다. 그것을 본 것도 아주 오래되었는데 이번 눈에 제법 그럴듯한 운치를 느꼈다.


하지만 그런 운치가 한편에서는 불편이고 누구에게는 두려움이다. 갑자기 내린 폭설로 도심의 교통은 마비가 되고 미끄럼 사고로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한다. 제설작업이 늦다며 역정을 내고 출근시간에 못 대어 종종 걸음을 친다.


시골살이에서도 눈이 꼭 목가적인 풍경만 주는 것은 아니다. 눈의 무게를 못 이겨 무너지는 낡은 집 지붕도 있고 애써 기른 과수의 가지도 부러진다. 값 비싼 정원수가 눈의 무게로 가지를 다친다. 눈이 그치고 나면 마당의 눈도 쓸어야 생활이 편하다. 마을길의 제설작업이라도 늦어지면 고립되기 십상이다. 유유자적 사는 전원생활이라면 하루 이틀 고립돼 사는 것도 즐길만 하겠지만 나처럼 시골에 살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고립되면 모든 스케줄이 엉망이 된다.


큰 길에서 한참 들어간 곳에 집을 짓고 산다면 먼 눈길을 혼자 쳐야 한다. 마을 사람들이 누구나 쓰는 큰길이라면 면사무소에서 일찌감치 제설작업을 해준다. 아니면 마을에 있는 제설시설로 차가 다닐 정도의 길은 쉽게 뚫리지만 내가 혼자 사용하는 도로라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것도 만만치 않다.


처음 시골로 이사 온 후 마을 큰길에서 300여 m 들어간 산 아래에 터를 잡았다. 눈이 내리고 나면 하루 종일 비상 탈출구를 만들어야 했다. 승용차라도 다니려면 마을 안길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혼자 치워야 했다. 그렇게 숨통을 열어놓아야 외부에서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었고 외부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만날 수 있었다. 눈으로 도로를 잃고 난 후 도로의 중요성을 새삼 알았다.


굳이 오늘 만날 사람이 아니라면 내일 모레, 눈 녹고 만나도 되지만 월간지를 발행하고 인터넷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도로는 하루하루를 사는 숨통이었다.


그래서 전원생활에서 여러모로 도로가 중요하다. 굳이 나의 경험이 아니라도 도로는 전원생활 터 잡기의 중요한 요소다. 터를 잡을 때 도로여건을 확인하는 것을 우선으로 치는 이유다.


또한 전원생활은 눈이 내리고 쌓여서 만드는 아름다운 설경, 목가적인 풍경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보고 즐겼다면 생활을 위해 그것들을 치워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다. 그래서 전원생활은 전원보다 생활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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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OK시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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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OK시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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