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은퇴 후 여가를 보내는 것이 사회 화두가 된 것은 연금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보험회사의 음모라는 내용을 담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직장 다닐 때 열심히 돈을 벌어서 노후자금을 마련하고 은퇴 후 생활을 즐기라는 것이 지금까지 노후대책에 관한 정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은퇴 후를 위해 현재 생활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문제인데 균형 잡힌 삶과 일의 조정을 통해 은퇴 없이 평생 현역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론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은퇴 후의 편안한 삶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일에 올인 했지만 막상 은퇴를 하고 보니 유유자적한 삶이 즐겁지도 않을 뿐 더러 일 중독자로 살아왔기에 새삼 휴식을 즐긴다는 게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놀아본 사람이 놀 줄 안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일본의 경제발전을 이루어낸 산업전사인 단카이 세대도 은퇴 후에 계속해서 일을 하길 원한다고 합니다. 일을 해야 존재 의미를 확인했던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지면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기 때문이죠.
얼마 전 모 구청이 진행하는 퇴직자 교육과정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런 현상이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님을 실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40대 이상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교육이 끝나자 60대가량의 아주머니께서 상담을 요청해왔습니다. 남편이 현재 학교 선생님인데 정년퇴직을 1년 정도 남겨두고 최근 전근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새로 만난 학생들에게 적응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퇴직을 앞당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남편이 일없이 집에만 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연금을 넉넉하게 받을 수 있으니 상대적으로 행복하지 않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은 얘기를 한다”며 답답함을 호소했습니다.
남편은 30년 동안 학교와 집만 알았던 모범적인 가장이라고 합니다. 놀 줄 도 모르고, 돈을 쓸 줄도 모르고 오로지 일밖에 모르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학교를 그만 둔 후의 생활은 단조롭기 이를 데 없을 것이란 얘기였습니다. 지금도 사사건건 가사에 관여를 하고 자신이 외출하는 것도 못마땅해 하며 잔소리를 하는데 하루 온종일 함께 지낼 생각을 하면 끔찍하기만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부가 함께 하는 것도 익숙지 않고, 뭐 새롭게 바깥 활동거리를 찾아볼 생각도 없는 것 같고, 앞으로 함께 할 시간을 어떻게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단 이 부부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실감했습니다.
일 중독자였던 남편들이 퇴직한 후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도 많고 바깥 활동이 활발한 아내와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직장 다니는 동안 월급을 꼬박꼬박 가져오는 것을 보고 내심 능력있다고 생각했던 남편들이 퇴직 후 세상 물정에 문외한인 모습을 발견하며 새삼 놀라는 아내들도 많습니다.
가부장사회 속에 살아온 남편들은 아내의 말을 듣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으며 급격히 고립됩니다.
비단 이것이 어느 가정 하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베이비부머의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이 문제는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떠오를 가능성도 높습니다. 노후자금이 준비 안된 것도 문제지만 돈은 있지만 삶의 보람을 찾지못하는 은퇴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은퇴자들을 보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잘 노는 법도 미리미리 배워둘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노는 것 또한 연습이 필요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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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봄 디자이너 조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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