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기기자
일본에 유학 중인 중국인들 사이에서 각성 효과가 있는 나무 열매 빈랑이 유입돼 도심 유흥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고 있다.
말린 빈랑을 먹고 있는 모습을 AI로 추출한 이미지
4일 일본 매체 일간 스파는 "빈랑이 일본 내에서 사실상 마약처럼 소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 가공된 빈랑이 불법은 아니지만, 각성 효과로 인해 이른바 '가벼운 마약'처럼 인식되며 일본 젊은 층으로도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빈랑은 대만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오랜 기간 기호품으로 사용돼 온 야자과 식물의 씨앗이다. 빈랑 씨앗에는 아레콜린 성분이 포함돼있는데, 이 성분이 신경계에 영향을 주면서 심장이 빨리 뛰고 땀이 나는 등 일시적인 각성·흥분 상태를 일으킨다.
매체는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 롯폰기의 한 DJ바에서 중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는 일본인 대학생 A씨(21)의 사례를 소개했다. 당시 A씨는 젊은 중국 남성에게 낯선 열매를 건네받았는데, 겉보기엔 대추나 아몬드와 비슷한 형태였다.
A씨는 "호기심에 하나를 입에 넣었는데 민트처럼 상쾌한 느낌이 퍼지다가 점점 강한 쓴맛과 함께 혀가 저려왔다"며 "평소보다 훨씬 빨리 취했고, 다음 날까지 두통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곳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손님 다수는 중국인이지만 일본인과 서양인 손님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A씨는 이 열매가 빈랑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A씨는 "술에 취한 여성 손님이 6~7알을 연달아 먹은 뒤 평소와 다른 과도한 흥분 상태로 춤을 췄다"며 "불법은 아니지만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마약처럼 사용되고 있고, 일본 젊은 층에도 퍼지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빈랑 열매
하지만 빈랑은 중독성이 있는 데다 구강암의 주요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특히 빈랑을 씹으면 구강암이 발생할 확률이 섭취하지 않는 사람보다 28배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암연구기구(IARC)는 빈랑을 발암 물질로 분류했고,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암연구소는 2003년 빈랑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중국도 2017년 아레콜린 성분을 구강암 유발 물질로 규정했다. 이같은 위험성으로 일부 국가에서는 소지나 유통을 금지한다.
중국 관련 사안을 취재해온 프리랜서 작가 히로세 다이스케는 "대만에서는 과거 트럭 운전사를 상대로 한 빈랑 노점이 풍경처럼 존재했지만 규제가 강화됐다"며 "중국 본토에서는 10~20대 젊은 층이 건조된 빈랑을 클럽이나 PC방에서 각성용으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머리가 또렷해진다는 인식 때문에 e스포츠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쓰인다"며 "일본에서는 클럽을 찾는 중국계 유학생들이 텐션을 높이는 일종의 각성용 기호품으로 소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생 빈랑은 식물검역 문제로 일본 반입이 불가능하지만, 포장된 건조 제품은 수입 제한 대상이 아니다. 이 때문에 가공품이 일본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체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 오사카 신사이바시 일대 일부 수입 식품점에서 빈랑이 판매된다는 정보가 있었으나 확인 결과 재고는 없었다"며 "중국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앱) 위챗을 통한 예약 주문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샤오홍슈에 '일본 빈랑' 등 문구가 달린 판매 계정이 다수 등록된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 빈랑'을 검색하면 "일본 빈랑 정품 소매·도매", "오사카 신사이바시에서 전달, 한 봉지 2000엔" 등의 문구가 적힌 게시글이 등록돼있다. 글에는 구입을 문의하는 댓글도 달렸다.
매체가 SNS로 접촉한 판매자로부터 입수한 빈랑 제품의 제조지는 모두 중국 후난성이었다. 히로세는 중국 내 규제 상황과 관련해 후난성만 예외적으로 허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빈랑의 소지나 사용이 불법은 아니다. 다만 중국에서는 '빈랑에 담배와 술을 더하면 염라대왕이 손짓한다'는 건강 위험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무분별한 섭취는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매체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