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아기자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달러 가치가 4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실물 자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여파다. 데이터 센터와 로보틱스, 전력 인프라에 대한 글로벌 성장 기대감 속에 비철금속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K넥실리스가 제조한 동박 제품.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아시아경제DB
2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3개월물 구리 선물은 6.7% 상승한 t당 1만3967달러(약 1992만2528원)까지 올라 올해 상승률이 12%에 달하게 됐다. 구리 외의 5개 주요 금속 가격도 일제히 올라 알루미늄은 4년 만에 최고치에 근접했고, 아연은 약 3% 상승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원자재 시장이 미국 달러 가치 하락, 실물 자산에 대한 수요 증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따른 지정학적 긴장 고조에 영향을 받아 급등세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소재인 구리 외에도 귀금속 가격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전 세계적인 공급 과잉 우려가 있었던 원유도 최근 몇주 사이 상승세를 탔다.
치카이 상하이 코사인 캐피털 매니지먼트 파트너십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국이 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하는 사이클 아래에서 구리 가격의 상승 기대감은 변하지 않았다"며 "미국이 인공지능(AI), 칩, 전력 인프라 건설을 지속하는 한 가격이 어디까지 오를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예상치가 없다"고 말했다.
금속 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은 미국 달러 지수가 4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직후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달러 약세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는 신호로 "나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달러는 아주 잘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블룸버그통신은 달러 가치의 하락이 원자재 가치를 끌어올릴 만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글로벌 수요 확대도 시장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테슬라는 28일(현지시간) 지난해 4분기 실적 보고에서 로보틱스와 AI 분야로의 투자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MS)도 데이터 센터를 위한 전력 인프라 확보를 강조했다. AI 데이터센터는 안정적 운영을 위해 고압전선이 필수적이라 데이터센터 증설과 함께 송배전망 투자가 동반 확대되는 흐름이 나타난다.
국내 전선·원자재 업계에서는 실적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구리는 전선 제조원가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제품군에 따라 90%에 달한다. 전선 납품 계약 다수에 원자재 가격 변동분을 제품 가격에 연동해 반영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어 구리 가격 상승이 판매단가 상승과 매출 외형 확대를 동반한다.
또 국내 정제련업계도 구리 가격이 오르면서 판매단가 상승과 재고자산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한국이 사실상 구리를 전량 수입한다는 점에서 무역수지 악화와 원화 약세 압력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구릿값이 오르면서 반도체 기판, 태양광 패널, 배터리 제품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제조원가 및 제품 가격 상승 우려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