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테크 스페셜리스트
지난 27일 양자컴퓨터의 핵심인 QPU를 연구하는 손영욱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교수 연구실에 들어서자, 실험의 성공을 바라는 연구원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연구의 어려움이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예였다.
손영욱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가 광기반 양자 컴퓨터의 핵심인 QPU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연구실의 한 측정 장비에는 광자 신호와 전기 신호의 파형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손 교수와 연구진은 광자 칩과 반도체 칩이 결합한 QPU 보드를 직접 들어 보이며 실험 과정을 설명했다.
손 교수는 현장에서 광자 기반 양자컴퓨팅에 대해 "광자 기반 접근이 양자컴퓨터를 대규모로 확장하는 데 가장 유리한 방식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초전도체, 이온트랩, 중성원자 등 다양한 큐비트 구성 방식 중에 비록 후발주자이지만 광분야가 유력하다는 주장이다. 이유는 확장성과 한국과의 연관성이다.
손영욱 교수팀이 개발한 광자기반 QPU. 사진=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손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초전도·이온트랩 방식의 양자컴퓨터는 큐비트 자체가 물질이기 때문에, 하나를 만들고 이를 가까이 모아 점차 개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큐비트 수가 늘어날수록 물리적 제약과 오류 문제가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손 교수는 "광자 기반 방식은 접근법 자체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광자 방식은 큐비트를 하나씩 모아 쌓는 구조가 아니라, 큐비트를 계속 만들어내는 기기를 중심으로 시스템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이를 자동차에 비유해 설명했다. 광자 큐비트를 만들어내는 핵심 장치는 자동차의 엔진과 같은 역할을 하며, 이 엔진의 성능에 따라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큐비트 규모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광자 소자는 하나의 장치에서 초당 수억 개, 경우에 따라 수십억 개의 광자 큐비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 교수는 "이 자체를 바로 양자컴퓨터라고 부르지는 않는다"며 "양자 정보를 처리하는 나머지 시스템이 함께 결합해야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구조가 갖춰질 경우, 기존 방식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큐비트 수를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손 교수는 자신이 과거 재직했던 싸이퀀텀이라는 기업의 경험을 언급했다. 싸이퀀텀은 광자 기반 양자컴퓨팅을 주력으로 이미 축구장 규모의 컴퓨팅 설비를 건설 중이다. 수십만 큐비트를 넘어 백만 큐비트 수준의 시스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손 교수는 이런 목표가 기존 양자컴퓨터 기준으로는 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광자 기반 구조에서는 기술적으로 설명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취재진에 광자 칩과 반도체 칩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된 QPU를 공개했다. 손 교수는 "광자 칩이 양자 정보를 담당하고, 반도체는 디지털 제어와 신호 처리를 맡는다"며 "이 반도체는 단순한 보조 기술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 작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구조는 한국이 강점을 가진 반도체 산업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최근 반도체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Co-Packaged Optics(CPO) 기술은 광자 기반 양자컴퓨팅과 기술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CPO는 반도체 칩과 실리콘 포토닉스(광신호를 칩에서 직접 처리하는 기술)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전기 대신 빛으로 데이터를 주고받게 하는 차세대 칩 연결 방식이다.
손 교수는 "AI 반도체 분야에서 CPU·GPU와 광통신을 결합하는 기술이 이미 산업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이 제작 기술은 광자 기반 양자컴퓨팅에서도 그대로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해외에서는 설계와 제작이 분리된 구조가 일반적이지만, 한국은 설계 역량과 제조 인프라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며 "이 점에서 광자 기반 양자컴퓨팅은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도 광양자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를 진행 중이다. KIST는 지난해 9월 광자 기반 시뮬레이터와 집적 광학 기반 양자 장치 기술 등을 소개하고 원격 연계 시연을 해 보였다. 광자기반 QPU도 공개했다.
KIST 연구팀이 개발한 광기반 QPU. 사진=백종민 테크스페셜리스트
이런 연구를 산업 단계로 연결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가 바로 양자팹이다. 조영현 KAIST 양자팹 연구소장은 "양자기술은 이제 실험실에서 개별 장치를 만드는 문제를 넘어, 제조와 시스템 공학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광자 기반 양자 실험은 대형 옵티컬 테이블 위에 다수의 광학 부품을 올려놓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온도·진동 등 환경 변화에 취약하고, 동일한 성능을 반복적으로 재현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는다. 조 소장은 "칩 기반으로 소형화하고 공정으로 안정화해야 오류 제어와 대규모 확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조영현 KAIST 양자팹 연구소장이 국가양재팹연구소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현재 KAIST에는 2027년 준공을 목표로 국내 최대 규모의 '개방형 양자팹' 연구동 건설이 진행 중이다. 2031년까지 약 451억 원을 투입해 37종 이상의 핵심 장비를 구축, 양자 기술 산업화의 허브로 활용될 예정이다.
KAIST가 추진 중인 양자팹은 특정 연구진을 대신해 소자를 만들어주는 시설이 아니다. 학내 연구자는 물론 출연연, 기업이 직접 공정을 수행하며 공정 레시피와 노하우를 축적하는 개방형 인프라를 목표로 한다. 광자 칩 공정이 기존 반도체 공정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국내 반도체 산업과의 연계 가능성도 크다.
KIST 역시 자체적으로 양재팹을 조성하고 광자 QPU를 자체적으로 설계·부품 제작·패키징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 확보가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양자팹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심주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장은 양자팹을 29일 발표한 양자종합계획의 핵심 인프라로 제시했다.
양자 분야 마스터플랜인 제1차 양자과학기술 및 양자산업 육성 종합계획은 오는 2035년까지 세계 1위 퀀텀칩 제조국 목표, 양자기업 2000개 육성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