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60년 만에 돌아온 붉은 말의 해, 병오년(丙午年)이다. 6월에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는데, 선거판만큼 말과 인연이 깊은 곳도 드물다. 전쟁터로 나가는 장수의 결기를 담은 '출마(出馬)'가 있는가 하면, 타의에 의해 떨어지는 '낙마(落馬)'의 비극도 공존한다. 재미있는 것은 '하마(下馬)'다. 똑같이 말에서 내려도 낙마가 비보(悲報)라면 하마평(下馬評)은 낭보다.
유권자에게 절실한 것은 출마나 하마보다 '상마(相馬)', 즉 말을 알아보는 안목이다. 춘추전국시대 최고의 상마가 백락(伯樂)은 고수였다. 이미 유명한 말이 아니라, 소금 수레를 끄는 볼품없는 말 속에서 천리마를 찾아내는 안목 때문이었다. 주식으로 치면 잡주 속에 숨겨진 블루칩을 발굴하는 혜안을 가진 셈이다.
당나라 문장가 한유는 "천리마는 항상 있으되 (알아보는) 백락이 드물 뿐"이라며 인재난을 탓하는 세태를 꼬집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리더 부족을 한탄하지만, 진짜 문제는 안목 부재일지도 모른다. '선량(選良)'을 진짜 선량(善良)하게 만드는 힘은 그들의 인품 이전에 유권자의 날 선 심판에서 나온다. 고전 속 말의 지혜를 빌려 그 기준을 세워보자.
첫째, '구방고(九方皐)의 파격'으로 프레임이라는 색안경을 벗어야 한다. 백락의 천거로 천리마를 찾아 나선 구방고는 왕에게 "누런 암말을 찾았다"고 보고했다. 막상 데려온 것은 '검은 수말'이었다. 왕이 "암수와 색깔도 구별 못 하느냐"며 책망하자 백락은 오히려 감탄했다. "그는 껍데기를 잊고 그 속의 생명력을 꿰뚫어 본 것이다." 과연 천하제일의 명마였다. 구방고의 교훈은 명확하다. 프레임에 따른 콘크리트 지지, 지역색을 탈피해야 진짜가 보인다.
둘째, 백락의 고지식한 아들처럼 외화내빈 스펙에 갇혀 '두꺼비'를 고르는 실수를 경계해야 한다. 백락의 아들은 아버지의 비법서인 '상마경'을 달달 외웠다. 책에 '이마가 튀어나오고 눈이 커야 명마'라고 적혀 있자, 그는 이 조건에 딱 맞는 두꺼비를 잡아와 천리마라 우겼다. 조건에만 집착한 탓이다. 이 촌극은 현대판 '스펙 만능주의'를 정통으로 찌른다. 스펙보다 살펴야 할 것은 실질이다. 국고만 축내는 '고스펙 두꺼비'를 들여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셋째, 고르는 것보다 '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비자 '설림' 편에 따르면 백락은 미워하는 자에겐 천리마 고르는 법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노마(駑馬·둔한 말) 감별법을 가르쳤다. 천리마는 희소하지만, 둔한 말은 시장에 널려 있어 훨씬 돈을 잘 벌어서였다. 선거의 이치도 같다. 최선과 최고가 없다면, 최악이라도 배제해야 한다. 정치판이 혐오스럽다고 외면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차에 탄 것과 같다. 나쁜 말을 축출해 수레가 전복되는 것을 막는 것이야말로 현실적인 상마술이다.
넷째, 동야필(東野畢)의 고사에서 '사람 대하는 태도'를 읽어야 한다. 춘추시대 노나라의 동야필은 당대 최고의 마부였으나, 말의 체력을 무시하고 기술만 믿고 혹사하다 결국 말을 쓰러뜨렸다. 성과를 위해 아랫사람을 쥐어짜고, 도구로만 여기는 것은 판단의 중요한 시금석이다.
마지막으로 '천금매골(千金買骨)'의 결단이 필요하다. 죽은 말 뼈를 500금에 사주자 살아있는 천리마가 모여들었듯, 선거는 유권자가 보내는 강력한 신호다. 어떤 신호를 보내느냐에 따라 인재의 질은 달라지는 법이다.
투표용지는 유권자가 쥔 고삐다. 나쁜 말은 거르고, 좋은 말은 올바른 곳으로 뛰게 만드는 힘이 그 안에 있다. 출마의 변과 하마평이 난무하는 병오년, 요란한 말발굽 소리에 휩쓸릴 것인가, 아니면 고삐를 단단히 쥐고 냉철한 상마(相馬)의 눈을 뜰 것인가.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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