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최근 가격 폭등을 거듭하며 투자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은. 귀금속이면서 산업재라는 독특한 지위를 가진 은은 과거부터 높은 가격 변동성으로 악명 높았다. 전설적인 명성을 가진 투자자들도 은의 변동성 때문에 순식간에 빈털터리로 전락하는가 하면, 막대한 부를 거머쥔 사례도 있다.
은 가격은 지난해 4월 저점 이후 연말까지 180%가량 폭등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오전 8시께 현물 기준 온스당 82.85달러까지 치솟았던 은은 이후 몇 시간 만에 9% 급락하며 '악마의 금속'다운 변동성을 과시했다.
서울 종로구 귀금속 거리에 진열된 은괴. 연합뉴스
원자재, 금속 투자자들 사이에서 은과 니켈은 예로부터 악마의 금속으로 불렸다. 높은 변동성으로 수많은 투자자에 곤욕을 치르게 한 탓이다. 은은 가치 저장 수단인 귀금속이면서, 동시에 여러 첨단 기기의 원자재로 쓰이는 산업재 속성을 보유해 경기 변화에 민감하다. 게다가 금 대비 시가총액 16% 안팎(올해 12월 기준)인 상대적으로 작은 유동성, 현물이 아닌 선물 계약 위주로 작동하는 가격 구조도 은 특유의 변동성을 키운다.
은 가격 변동성이 최대에 달했던 때는 1980년 3월27일, 일명 '은의 목요일'이었다. 미국 투자자이자 금융 범죄자인 헌트 형제가 은을 독점하려다 청산 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들 형제는 1979년부터 이듬해 초까지 은 선물 계약을 체결하며 전 세계 은 보유량의 3분의 1을 가져갔다. 이로 인해 1980년 1월18일 은 가격은 49.45달러를 기록, 전년 대비 713% 폭등했다.
선물 계약으로 국제 은 보유량의 3분의 1을 매집했던 헌트 형제. 글로벌 불리온 서플라이어 홈페이지
헌트 형제는 레버리지를 활용해 은을 끊임없이 매입할 수 있었다. 확보한 은의 가격이 오르면, 해당 은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아 다시 선물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이를 보다 못한 국제 귀금속 거래소 '코멕스(COMEX)'는 은 선물에 대한 증거금을 인상했고, 연준(Fed)도 은 관련 신용 공급을 축소했다.
이후 은 가격은 급락했고, 헌트 형제는 은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을 갚지 못해 마진콜(청산) 위기에 몰렸다. 은 가격은 1980년 1월 48달러에서 3월27일 10.2달러까지 순식간에 폭락했고, 파산한 헌트 형제는 시장 조장 및 교란 혐의로 손해배상금 지불 판결을 받았다.
워런 버핏도 1997년 은 가격 상승에 크게 걸었지만 투자 실적은 좋지 않았다. 워런 버핏. EPA연합뉴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도 은에 투자한 적이 있다.
1997년 그는 자신이 이끌던 투자사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 서한에서 "은 1억1200만온스(약 3500톤)를 매입했다. 이 포지션으로 9740만달러의 세전 이익을 거뒀다"며 "그동안 은의 펀더멘탈을 추적하긴 했지만 보유한 적은 없었는데, 최근 수년간 은 재고량이 떨어져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이루려면 은 가격이 더 오를 거라는 판단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같은 해 국제 은 산업 기관 '실버 인스티튜트'가 추산한 미국 광산 내 은 채굴량과 맞먹는 규모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보유했던 은을 2005년에 전부 처분했다. 손실을 보진 않았지만, 투자 성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버핏은 2006년 주주 행사에서 "이제 은은 모두 처분했지만, 솔직히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다"며 "나는 너무 빨리 샀고 너무 빨리 팔았다"고 시인했다. 은 가격은 버핏의 매도 시점 뒤 향후 5년간 약 6배 폭등했다.
버핏과 함께 '세계 3대 투자 거장'으로 꼽히는 조지 소로스, 짐 로저스는 은 때문에 희비가 엇갈렸다. 두 사람은 '퀀텀펀드'라는 헤지펀드를 함께 운용하며 10년간 4200%의 수익률을 낸 사업 파트너였지만, 2011년 은에 대해서는 전망이 달랐다.
짐 로저스(왼쪽)와 조지 소로스. 짐 로저스 홀딩스, 조지 소로스 홈페이지
로저스는 은값이 온스당 30달러대로 거래되던 2010년 12월 여러 외신 인터뷰에서 "은 가격은 50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본다"며 투자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은 가격은 이듬해 4월 중순까지 49달러로 치솟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소로스가 운영 중인 펀드가 금과 은 대부분을 매도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1주일 만에 약 26% 급락했다. 특히 하락의 정점이었던 2011년 5월5일에는 하루 가격 낙폭이 8%를 기록했다. 당시 파이낸셜 타임스(FT)는 "헌트 형제 사건 이후 은이 최대의 조정을 받은 날"이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