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칼럼]'황금기'로 날아가는 눈먼 투자자들

기존 규범 붕괴 속 불확실성 커져
경제 붕괴 원인·회복 가능성 공존

클라이브 크룩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블룸버그

10년 전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 총재를 지낸 머빈 킹이 쓴 책 '근본적 불확실성(radical uncertainty)'을 호평한 적 있다. 당시 통계 분석으로는 다룰 수 없는 종류의 불확실성인 근본적 불확실성이 금융 규제 당국에 시급한 문제라는 킹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러나 비범했던 지난 한 해가 끝나는 상황에서 이러한 과제는 더는 제한된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다.

지난 12개월간 미국에서 무역·재정·통화정책 등 경제정책의 거의 모든 규범이 무시되는 것을 목격했다. 동시에 미국 경제는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전환만큼 중대한 경제 혁명의 최전선에 서 있다. 다만 인공지능(AI) 혁명은 훨씬 더 빠르게 전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나는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오랜 세월 동안 경제정책에 대해 써왔지만, 지난 1년간 일어난 격변을 닮은 사례를 목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어디로 향할까? 답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모두 거짓말을 하거나 착각에 빠져 있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 불확실성의 요지다. 전문가들의 예측을 뒷받침하는 모델은 이런 급격한 변화, 특히 이런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다. 기존 패턴에 기반한 위험 측정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내년에 경제가 붕괴한다면 그것은 역사상 원인이 넘쳐나는 붕괴가 될 것이다. 원인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고를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붕괴는커녕, 어쩌면 경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그 후임 정부가 내리는 모든 선택(좋든 나쁘든)을 압도할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이 정도의 불확실성은 드물다.

현재 경제 상황을 둘러싼 혼란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발표된 공식 통계는 미국 경제가 순항하고 있음을 나타냈다(3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연율 기준 4.3%라는 인상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실업률은 상승세를 보였다(이에 경기 둔화를 우려한 연방준비제도(Fed)는 이달 초 정책 금리를 다시 0.25% 인하했다).

어쩌면 AI가 성장과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노동 수요를 둔화시키는 기묘한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AI가 직장을 혁신할 만한 잠재력을 지닌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투자 수치는 분명히 호황을 나타내고 있지만, 고용과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은 당분간 추측에 불과하다. 우리가 가진 수치가 신뢰할 만하다 해도 해석하기 어려울 것이며, 정부 셧다운(Shut Down·일시적 업무정지) 여파로 공식 통계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제무역에 대한 수십 년간의 통념은 폐기됐다. 과거에 무역은 경쟁, 효율성, 비교우위, 상호이익에 관한 문제였다. 이제는 누가 누구를 착취하느냐의 문제다. 수십 년간 기술 낙후와 경제 부진이라는 허구적 역사에 분노한 미국은 더는 발목 잡히지 않겠다는 태도다. '상호 관세' 같은 조치를 통해 글로벌 경제 정의의 외형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는 무역이 '자유롭다'거나 '공정하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전문가들은 미국에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주기 위해 무역을 관리할 것이며, 국제 제재는 물론 오랜 동맹에서의 탈퇴를 포함한 국제 제재까지 동반될 수 있다.

둘째, 재정정책이라는 개념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정치인들은 앞으로도 세금과 정부 지출, 어느 쪽이 이기면 누가 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느냐를 두고 싸울 것이다. 그러나 공공 차입과 공공 부채는 이제 정치적으로 무의미해졌다. 어느 당도 특정 정책이 재정적자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과장하고 있는가? 미국 경제는 완전고용에 근접했고,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재정적자는 GDP의 약 6%에 달한다. 공공부채는 GDP의 100%(60년 만의 최고치)에 이르며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책 입안자들은 경기 침체기에 차입을 늘려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정부의 능력을 우려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정치인이 '재정 운용 여력'이 무한하다고 믿는다는 점이 아니라(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다.) 이제는 아예 그 문제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셋째, 우리가 알고 있던 통화정책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까지 자유무역이 좋고 재정 책임이 중요하다는 생각만큼이나 확고했던 통념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효과적으로 작동해왔다는 것이다. 통화정책은 시차를 두고 효과가 나타나고, 정치인들은 단기 문제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정치에 좌우되는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상승을 초래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물가 상승이 뒤따를 것을 알면서도 정치적으로 더 인기 있는 정책(금리 인하)을 선택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Fed를 정치화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백악관 인사(스티븐 마이런)를 Fed에 앉히고, 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로 다른 이사를 해임하려 했으며, 기회 있을 때마다 Fed 지도부를 공격해 왔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내년 5월에 물러날 예정이고, 대통령은 곧 후임자를 지명할 것이다. 그는 정치적 충성 인사를 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인플레이션이 다시 2%로 돌아오면 Fed가 물가 목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간 물가 상승률 2%를 목표로 삼는 대신 1.5~2.5%나 1~3% 같은 목표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선트 장관이 현행 목표치에 반대하는 이유는 '소수점 단위까지 정확한 수치는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Fed 스스로 그런 정확성에 얽매여 있다고 보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이상한 주장이다. 인플레이션은 5년간 2% 목표를 웃돌았고, Fed는 2028년이 돼서야 그 수준으로 완전히 돌아올 것으로 보고 있다(게다가 어떤 목표 범위든 소수점 단위까지 정확한 수치가 중요하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목표 범위의 상단이 사실상 새로운 목표, 즉 2%가 아닌 2.5%나 3%가 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인식과 덜 독립적인 Fed가 결합하면 기대 인플레이션이 오르고, 실제 인플레이션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경제는 놀라울 정도로 회복력이 강하다. 앞으로 몇 달 동안 그 회복력은 더욱 그래야 한다. 수십 년간 미국 경제를 잘 떠받쳐온 무역·재정·통화정책 합의가 무너지는 상황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규범이 결국 괜찮을 수도 있고, 트럼프 대통령 이후 옛 규범이 부활할 수도 있다. AI의 등장으로 이런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경제가 더욱 성장할지도 모른다. 투자자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약속된 황금기에 거액을 걸고 있다.

클라이브 크룩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Investors Are Flying Blind Into the 'Golden Age'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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