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진기자
직장인 김모씨(29)는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을 초기화했다. 몇 달 전 우연히 경기도 부천역 일대에서 활동하는 유튜버와 BJ의 영상을 본 뒤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가 연이어 추천된 탓이다. 그는 "노래방에서 난장판을 벌이는 등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이들이 처음엔 신기했지만, 어느 순간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며 "요즘은 클릭 하나도 신중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고리즘 초기화 관련 이미지. GPT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알고리즘 리셋' 유행하고 있다. 자극적인 콘텐츠에서 벗어나 자신이 볼 정보를 주체적으로 선택하려는 능동적 소비 움직임이다.
30일 취업준비생 신모씨(25)는 "최근 SNS가 추천하는 콘텐츠를 정리했다"며 "몇 번의 최종면접 낙방 후 '멘털 잡는 법' 영상을 찾아보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실패담 등 우울감을 자극하는 영상만 꼬리를 물고 추천됐다"고 전했다.
소개팅이나 연인 간 데이트에 앞서 알고리즘을 손보는 이들도 있다. 알고리즘에 의해 노출된 콘텐츠로 인해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윤성씨(27)는 "인스타그램 돋보기 탭에 보디빌더 사진만 가득해 혹시 운동에 과하게 몰입한 사람처럼 보일까 걱정됐다"며 "소개팅을 앞두고는 요리나 여행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더 자주 클릭해 목록을 바꿨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박모씨(26) 역시 "연인과 함께 영상을 보던 중 추천 목록에 극단적 주장이 담긴 정치 영상이 떠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다"며 "그날 이후 알고리즘 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충동구매를 막기 위한 '경제적 이유'로 알고리즘을 정리하기도 한다. 서모씨(30)는 "옷 관련 게시물을 몇 번 눌렀더니 소비를 유도하는 콘텐츠만 계속 노출됐다"며 "불필요한 과소비를 막기 위해 일부러 관심 없는 뉴스 등을 검색해 쇼핑 알고리즘을 밀어냈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알고리즘은 소비자의 관심을 특정 영역에 가두고, 부정적인 성향을 본인도 모르게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며 "MZ세대의 알고리즘 리셋 움직임은 자신이 노출되는 정보 환경을 능동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이자 디지털 콘텐츠 소비의 주도권을 쥐려는 태도"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