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미기자
기부 뉴스가 쏟아지는 연말이다. 취약계층을 위한 성금 기탁, 연탄·김장 봉사, 장학금 출연, 재난 구호금 지원까지. 기업들의 보도자료는 상생과 동행이라는 단어로 채워진다. 모두가 "어렵다"고만 하는 경제 환경에서 기부는 늘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통계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이 온기가 한국 사회를 정말 따뜻하게 하고 있는가.
보건복지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국내 개인과 법인의 기부금은 약 28% 늘어 16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부금 비중은 오히려 낮아져 0.7%선이 무너졌다. 경제 규모는 커졌는데, 기부의 속도는 따라가지 못했다는 의미다. 기부 주체별로 보면 개인의 기부금이 47% 늘어나는 동안 법인이 낸 기부금은 4% 감소했다. 지난 10년간 기부금 증가가 개인의 선의에 의존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기업 기부의 온기가 식고 있다는 것은 기업 실적과 기부 증가율에서도 드러난다. 국내 500대 기업의 올해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13% 넘게 늘어나는 동안 기부금은 3.6%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의 증가 속도 만큼 사회에 환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의 기부가 연속성을 가지고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보다는 연말 이벤트나 사회적 정당성을 보여주는 마케팅 성격을 가지게 된 이유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 기업들은 기부금의 상당 부분을 재단이 장기 전략으로 집행한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포드 재단처럼 기업과 창업자가 분리된 기부 구조가 자리 잡았다. 영국·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는 기업 기부가 공공 재정의 보완 장치로 작동하기도 한다. 기후 변화, 직업 재교육, 지역 공동체 회복 같은 영역에서 정부·기업·비영리단체가 역할을 분담하는 식이다. 기업 기부는 일회성 후원이 아니라, 사회 리스크 관리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다. 또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업 기부를 법인세에서 직접 공제하거나 높은 한도를 인정해, 기부를 비용이 아닌 전략적 투자로 설계할 수 있게 한다.
반면 한국의 제한적인 세제 인센티브는 기업 기부를 주저하게 하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법인이 기부금을 납부하면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현행 세법상 기업 기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정기부금은 법인 소득의 10%까지만 손금(비용)으로 인정된다. 이를 넘는 기부는 세제 혜택 없이 지출로 처리된다. 기부를 많이 할수록 세무상 불리해지는 구조다. 한도를 초과할 경우 주주 이익 훼손이나 배임 논란까지 감수해야 한다. 상장사일수록 기부에 대한 내부 저항이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구조에서 기업 기부는 자연스럽게 연말 일회성 행사로 수렴한다. 장기적·대규모 사회 투자보다는 이미지 관리용 후원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기부를 많이 할수록 불리해지는 구조에서 지속 가능한 나눔은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 기부가 이벤트를 넘어 장기적인 사회 실천으로 자리 잡으려면, 기부를 경제의 언어로 다시 써야 한다. "기부는 여력이 있을 때 하는 것"으로 남겨두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