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한 것도 아닌데 적당히 하자” 속초시 성비위 폭로에 ‘2차 가해’ 논란

13년 전 성비위 의혹 L팀장 승진 소식에 피해자 폭로
노조 게시판엔 "적당히 하자" 은폐 권유 글 올라와 파장
“벌 충분히 받았다…서울처럼 게시판 폐쇄하자” 촉구

강원 속초시청이 과거 발생한 성폭력 미수 사건 폭로로 발칵 뒤집힌 가운데 조직 내부에서 사건을 무마하려는 조직적인 '2차 가해' 정황이 포착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속초시지부 홈페이지 캡처.

속초시청 전경.

사건은 최근 속초시청 소속 공무원 A씨가 13년 전 상급자였던 L팀장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했던 사실을 내부 게시판에 공개하며 시작됐다. 현재 타지역으로 전출 간 상태인 A씨는 "성범죄 의혹이 있는 인물이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며 L팀장의 승진 반대와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용기 있는 고백에 돌아온 것은 동료들의 위로가 아닌 '침묵의 강요'였다.

21일 속초시청 노조 게시판에는 '적당히 합시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와 공분을 사고 있다.

작성자 B씨는 해당 글에서 "내용을 보니 당한 것도 아니고 잘 피한 것인데, 피해자도 전출 갔고 언론에 나온 것으로 벌은 충분히 받은 것 같다"며 "동료끼리 적당히 모른 척 넘어가자, 일 키우지 말자"고 주장했다. 성폭행 미수라는 중범죄 의혹을 '동료 간의 해프닝' 정도로 치부한 것이다.

특히 B씨는 조직적 은폐를 정당화하기 위해 타 지자체의 사례까지 들며 "서울은 징계나 직위해제 없이 조용히 처리하고, 노조 게시판도 전출자가 글을 못 쓰게 외부 접속을 차단해 폭로를 원천 봉쇄한다"며 속초시 노조 게시판 역시 외부 접속을 차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한 공무원은 "이딴 걸 사례랍시고 들이미는 이분은 제정신인가 의심스럽네요"라고 했다.

이 같은 게시글이 공개되자 시민들과 공직 사회 내부에서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 시민은 "성범죄 미수를 '잘 피했다'고 표현하는 사고방식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며 "이런 폐쇄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제2, 제3의 피해자가 어떻게 목소리를 내겠느냐"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전형적인 '침묵의 카르텔'이자 심각한 2차 가해라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13년 만에 입을 연 것은 조직 내 자정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가해 의혹 인물에 대한 엄정한 수사는 물론, 게시판을 통해 피해자에게 굴욕감을 주고 은폐를 모의한 세력에 대해서도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속초시는 사무관 승진 대상자에 대해 과거 성 비위 의혹이 제기되자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관련 법령에 따라 L팀장을 직위 해제한 상태다.

지자체팀 이종구 기자 9155ing@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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