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관광 100만명 시대 눈앞…다음 과제는 소비

올해 크루즈 입국 관광객 100만명 육박 전망
짧은 체류·병목 인프라로 소비효과는 제한
소비로 연결될 구조 설계가 향후 성패 가른다

올해 한국을 찾는 크루즈 입국 관광객이 1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크루즈 관광이 다시 국가 관광 전략의 전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가장 늦게 회복됐던 크루즈 시장이 본격적인 반등 국면에 접어들며, 관광을 넘어 유통·외식·지역 내수 전반에 새로운 성장 기회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크루즈 관광이 단순한 방문객 수 확대를 넘어 실제 소비로 이어지는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의 설계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항에 입항한 13만5500t급 크루즈 아도라 매직시티호. 연합뉴스

크루즈를 '지역관광 인프라'로…부산·제주·인천의 역할 분담

19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크루즈 선박을 통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0월 기준 81만4688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전체 방문객 73만1499명을 이미 넘어선 수치로, 연말 2개월간 성적에 따라 연간 크루즈 방문객 100만명 돌파 여부가 가려질 전망이다.

최근 크루즈 관광객 증가의 출발점은 정부 정책이다. 해양수산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크루즈 관광을 단순한 해상 교통이 아닌 지역관광·내수 활성화 수단으로 규정하고, 기항지 확대와 인프라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단시간에 수천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입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크루즈는 숙박·교통·쇼핑·외식 소비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는 고효율 관광 콘텐츠로 평가된다.

특히 팬데믹 이후 동북아 크루즈 노선이 재가동되면서 부산·제주·인천을 중심으로 대형 크루즈선 입항이 빠르게 늘었다. 중국발 크루즈 수요 회복도 방한 크루즈 관광객 증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는 기항 중심의 구조가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체류 시간이 늘어나는 모항·준모항 크루즈 육성을 중장기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는 크루즈 관광의 '현장 실행자' 역할을 맡고 있다. 부산시는 국제크루즈터미널 기능 개선과 CIQ(세관·출입국·검역) 처리 효율화, 도심 접근성 강화를 통해 대형 크루즈 수용 능력을 높이고 있다. 아울러 중국 단체 크루즈 관광객에 대한 상륙 허가 제도 운영 등 제도적 장치도 병행하고 있다.

제주도는 강정항을 중심으로 준모항 크루즈 실험에 나서며 국내 체류 시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 중이다. 또한 인천은 크루즈 관광을 항만 사업에 국한하지 않고 도시 관광 전략과 연계하고 있다. 크루즈터미널과 도심 상권, 면세점, 전통시장을 연결하는 동선을 설계해 '하선 즉시 소비'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제주도는 지난 2일부터 제주항 국제여객터미널과 강정 크루즈터미널에 크루즈 관광객 입국심사 시간을 줄일 자동출입국심사대를 설치하고 본격 운영을 시작했다.

유통·외식업계, 해외 크루즈 관광객 '실전 대응' 나섰다

정부·지자체가 유입 기반을 만들자 유통·외식업계도 해외 크루즈 관광객을 겨냥한 구체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인천항 크루즈터미널에서는 오뚜기가 푸드트럭 형태로 진라면, 컵누들 등 대표 제품을 활용한 K푸드 체험 행사를 운영하며 브랜드 노출과 시식 효과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 짧은 체류 시간에도 소비가 가능한 즉석식품 중심 구성이다.

편의점업계도 움직이고 있다. GS25와 CU는 주요 관광지 인근 점포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간편식, 즉석 조리 상품, 소포장 스낵 진열을 강화하고 있으며, 영어·중국어 병기 안내를 확대하고 있다. 크루즈 관광객의 특성을 고려해 빠른 결제와 포장이 가능한 상품 비중을 늘린 것이 특징이다.

버스로 향하는 중국인 단체 크루즈관광객들. 연합뉴스

외식 프랜차이즈 중에서는 BBQ, 교촌치킨 등 치킨 브랜드가 관광지 인근 매장에서 외국인 전용 메뉴판과 테이크아웃 동선을 강화하고 있다. 크루즈 관광객 특성상 짧은 시간 내 섭취와 이동이 가능한 메뉴가 선호된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면세·유통 분야에서는 롯데면세점, 신라면세점이 크루즈 관광객을 겨냥한 소형 패키지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K뷰티 기획 세트를 강화하고 있다. 항만과 도심 면세점을 잇는 셔틀 동선과 단체 방문 프로그램을 통해 크루즈 관광객을 직접 흡수하려는 전략이다. 일부 지역에선 전통시장과 연계해 김, 김치, 과자류 등 한국적 소비재를 묶은 관광 상품도 실험 중이다.

'많이 오는 관광'에서 '돈 쓰는 관광'으로

크루즈 관광의 가장 큰 과제는 여전히 소비 전환율이다. 크루즈 관광객 수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지역 상권이 체감해 소비 효과는 이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항 시간이 짧고 단체 이동 중심의 관광 구조가 유지되는 한 소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우선 크루즈 관광은 겉보기와 달리 양적 확대에서도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대형 크루즈 한 척당 3000~5000명이 동시에 하선하는 상황에서 CIQ 처리 능력과 교통 동선이 병목으로 작용한다. 하선 대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실제 관광과 소비 시간은 줄어들고, 이는 선사 입장에서 한국 기항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항만과 도심을 잇는 연결성도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다. 셔틀버스 증설이나 임시 동선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선사들이 기항지를 추가하기보다 기존 노선을 유지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부산·제주·인천 등 일부 항만에 크루즈가 집중되는 구조 역시 장기적으로는 확장성의 제약 요인이다.

인천에 기항한 크루즈 세븐시즈 익스플로러호.

질적인 측면에서도 한계가 분명하다. 평균 하선 시간이 반나절에도 미치지 못해 고가 소비나 심층 체험이 어렵고, 소비는 기념품·면세·식사 중심의 저단가 구조가 굳어져 있다는 평가다. 다국어 안내와 결제 환경, 대량 관광객 대응 경험 부족도 소비 확대를 가로막는다. 특히 전통시장과 지역 상권은 크루즈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시스템이 부족해 소비 기회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업계는 크루즈 관광의 성패는 이제 유치 경쟁이 아니라 설계 경쟁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크루즈가 스쳐 지나가는 관광에 그칠지, 지역 내수와 산업으로 축적되는 관광으로 진화할지는 지금부터의 설계에 달려 있다"며 "단순히 방문객 수를 늘리는 경쟁에서 벗어나 체류 시간을 늘리고 어디에서 얼마를 쓰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유통경제부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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