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한기자
"혐오 표현이 우려되는 집회는 행진 코스를 일부 제한하고, (위반 시) 수사를 통해서 책임을 묻겠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18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혐오집회 대응 방안이다. 경찰의 역할을 집회 관리자가 아닌 사전 차단자로 설정한 발언으로, 헌법적 가치를 위협할 소지가 크다.
대한민국 헌법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명시적으로 보장하며 허가나 검열을 금지한다. 집회의 자유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권리에 그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할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포함한다. 행진 경로는 메시지의 효과적 전달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헌법재판소는 집회 장소 제한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왔다. 2022년 12월 헌재는 대통령 관저 인근의 집회를 전면 금지한 집시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국민이 집회를 통해 대통령에게 의견을 표명하고자 할 때 대통령 관저 인근은 그 의견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장소"라며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의 집회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한 것은 집회의 자유의 핵심적인 부분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이어 "막연히 폭력·불법적이거나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가정만을 근거로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리는 모든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2003년 외교기관 인근과 2018년 국회의사당, 국무총리 공관, 각급 법원 인근 집회 금지에 대한 위헌·헌법불합치 결정 역시 모두 같은 취지다.
현재 경찰이 문제 삼는 것은 구체적인 위험이 아니라 집회의 성격과 과거 이력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선별적 개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정 집단의 발언이 논란이 된다는 이유로 경로를 제한하는 것은 집회의 핵심 요소를 사전에 제약하는 검열적 효과를 낳는다. 혐오의 판단 기준 역시 불명확하다. 무엇이 혐오인지, 어느 수준에서 마찰이 예상되는지는 경찰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기본권 제한은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을 갖춰야 한다. 추상적 개념을 근거로 행진을 제한한다면 결국 집회의 자유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
경찰의 임무는 현장에서 명백한 위험이 발생할 경우 이를 사후적으로 제재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다. 집회를 사전에 틀어막기 시작하면 헌법적 가치는 언제든 행정 편의를 위해 축소될 수 있다. 헌재의 판례들이 반복해서 경계해 온 것도 바로 사전적·포괄적 제한의 위험성이다. 유 직무대행의 발언은 집회를 보호가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공권력의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듣기 거북한 표현마저 공론의 장에 남겨두는 인내에서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