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훈기자
인공지능(AI) 항체 신약 개발 기업 프로티나가 내년 상반기까지 비만치료제 등 3개의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고 내년 하반기 이후 라이선스 아웃(기술이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신약 개발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협업에도 속도를 내, 계획한 신약 후보 물질을 내년 중 모두 공급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윤태영 프로티나 대표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동주 기자
윤태영 프로티나 대표(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17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3개 내외의 후보를 압축 개발로 도출하고, 내년 하반기 중으로는 1~2건의 의미 있는 라이선스 아웃을 진행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 중에는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일 만한 에셋(신약 후보)도 있다"고 말했다.
프로티나는 윤 대표가 카이스트 교수이던 2015년 창업한 기업이다. 단백질과 단백질의 상호작용(PPI)을 단일분자 수준에서 정량화하는 '스피드(SPID·Single-molecule Protein Interaction Detection) 플랫폼'을 기반으로, 임상 샘플 분석 사업에서 출발해 최근에는 AI 기반 신약 개발에도 도전하고 있다.
프로티나 사업 전략의 큰 축은 '바이오베터(혹은 바이오베스트) 압축 개발'이다. 전임상·임상 1상 등 초기 단계에서 유효성이 확인된 항체를 출발점으로 삼아 AI를 기반으로 한 자율실험으로 수개월 안에 효능과 물성을 끌어올리고 서열을 크게 바꾼 새로운 후보 물질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완전히 새로운 항체 설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특허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윤 대표는 "기존에는 후보 발굴에 최소 2~3년이 걸리던 과정을 3~4개월로 압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로티나는 비만 분야에서도 '감량 경쟁'이 아닌 '유지'로 틈새를 노린다. 윤 대표는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계열은 효능이 강력하지만 주사 거부감·높은 가격 등의 이유로 중단율이 높고, 투약을 중단하면 리바운드(체중 재증가)가 온다"며 "우리는 3개월에 한 번 투여하는 항체의약품으로 체중 유지와 리바운드를 최소화하는 포지셔닝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티나는 글로벌 빅파마가 개발 중인 항체를 출발점으로 삼아 기능성을 강화한 새로운 항체 후보를 개발 중이다.
윤태영 프로티나 대표가 연구실에서 샘플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 윤동주 기자
삼성 바이오와의 협력도 가속화되고 있다. 프로티나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서울대 백민경 교수 연구팀과 함께 구성한 컨소시엄으로 총 470억원 규모의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항체신약 개발' 국책사업 참여기관으로 선정돼 과제를 수행 중이다. 이 과제는 2027년까지 신약 후보물질 10개를 발굴하고, 하나의 신약 후보물질은 IND(임상시험계) 제출에까지 이르게 한다는 목표가 뼈대다. 윤 대표는 "프로티나가 발굴한 유망 후보 물질은 내년까지 삼성바이오에피스 측에 공급될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 이후에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후속 개발 단계(공정·독성평가·IND 등)를 충분히 진행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항체의약품에서 항체(약)는 'CDR(상보성 결정 영역)'이라 불리는 6개의 '고리'와 같은 부위가 튀어나와 항원(표적)과 결합해 신호 전달을 막거나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등의 반응을 유도해 질병을 치료한다. 그런데 이 고리 역할을 하는 CDR은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나풀나풀한' 가변 구조를 지녀 AI로 구조 설계를 하기 힘들었다.
프로티나는 AI와 자율실험이 결합된 '폐쇄형 루프(closed-loop)' 시스템으로 이런 문제를 풀었다. 기존에는 공개된 논문 데이터를 위주로 AI가 데이터를 학습했다면 자체 플랫폼으로 실험 데이터를 대규모로 만들고 이를 다시 AI 학습과 설계에 연결하는 시스템이다. 서울대 백민경 교수팀이 개발한 항체 설계 생성형 AI 'AbGPT'가 항체 후보군을 줄이면, 프로티나의 '스피드 플랫폼'이 실제 항체를 만들고 효능·안정성 등을 검증해 다시 AI에 피드백하는 구조를 띤다. 2~3주가 걸리는 이 사이클을 3~4회가량 반복하면 3개월 내에 기존 약물에 비해 효능과 안정성, 생산성까지 향상시킨 신약 후보물질 발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윤 대표는 AI 기반 항체 설계의 강점으로 "사람이 선택하지 않을 조합까지 과감하게 탐색해 완전히 새로운 항체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꼽았다. 항체가 항원을 잡는 CDR 서열을 하나씩 바꿔가며 얻은 '기본 데이터'를 바탕으로 통상 연구진은 항체와 항원 사이의 결합력이 유지되거나 좋아지는 변이나 서열을 중심으로 보수적으로 항체를 조합하지만, AI는 결합력을 떨어뜨리거나 사라지게 만드는 변이까지 섞어 다수의 변이를 동시에 조합하는 '공격적 디자인'을 수행한다. 개별 변이만 보면 성능이 나빠지는 조합이더라도 여러 변이를 함께 적용하면 오히려 원본보다 결합력이 크게 개선되는 후보가 나타나며, 이를 수천~수만 개 단위로 실제 제작·실험 검증해 최적 후보를 추려내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원본과 서열이 크게 다른 '새로운' 신약 후보물질을 짧은 기간에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이 프로티나와 손잡은 배경도 '실험 기반 빅데이터 생성 역량'에 있다. 그는 "AI가 설계한 항체가 곧바로 신약이 되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 AI가 설계한 수천·수만 개 후보 물질 중에서 약품으로 쓸 만한 고품위 후보를 건져내고, 실제 약으로 '바꿔내는' 과정은 결국 실험 빅데이터가 필요하다"며 "프로티나는 항체를 빨리 만들고 검사하는 속도가 글로벌 최고 수준이, 신약 개발 분야에서는 후발 주자인 삼성 입장에선 속도가 중요했기 때문에 우리와 협력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프로티나는 신약 후보 물질 선별에서도 결합력만 보지 않고 생산성, 안정성, 면역세포 상호작용 등 개발 적합성을 함께 평가한다. 윤 대표는 "후반 개발에서도 실패할 확률을 낮추는 데 개발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