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담(手談)]새해의 첫 수는 자기 진단이다

해의 바뀜은 전환점이다. 낡은 것을 뒤로하고, 새로움을 취하는 시간.

더해지는 것은 나이만이 아니다. 삶의 희망 또한 복원된다. 다시 부족함을 채울 수 있다는 기대감. 더함의 단맛을 상상하며, 새해를 기다리는 이유다. 누구에게나 출발선의 기회를 부여하기에 새해의 시작은 설렘을 동반한다. 응어리진 상념의 찌꺼기를 걸러주는 과정이 있어야 새로움을 충전할 공간도 생겨난다.

바둑에서 새해는 인연의 더해짐을 의미한다. 지난 1년의 대국에서 아쉬웠던 각자의 갈증을 풀어줄 기회다. 더하고 싶은 바둑의 인연이 어디 하나둘인가. 정교한 끝내기, 정석(定石)의 올바른 활용, 초반 포석의 짜임새, 사활의 맥, 회심의 묘수…. 바둑에서 각자의 바람을 열거한다면 천 개의 수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채워도 아쉽고, 추가해도 더하고 싶은 게 바둑 아닌가.

자기의 부족함을 채우려면 제대로 진단하는 게 중요하다. 무엇이 결여돼 있는지를 살피는 과정. 출발선부터 잘못 서 있다면 목표 지점에 제대로 도달할 수 없다. 문제는 자기의 허점을 파악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점이다.

이미 채웠다고 여기는 것이 사실은 공허한 욕심의 투영물인 경우도 있다. 여전히 부족한데 이미 채웠다고 여기는 마음이라니. 손으로 허공을 힘껏 움켜줘 봐야 무엇이 잡히겠는가. 올바른 진단은 나아감을 준비하는 첫걸음이다.

실제로 한 해가 더해질수록 강해지는 이가 있다. 강함의 외피를 더하는 과정이 이어지니, 그의 바둑은 절로 단단해진다. 자기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는 노력을 더 하니 그의 실력은 향상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새해를 활용할 줄 아는 이가 성공에 다가선다. 이는 정치에서도 천착해야 할 지점이다.

자기의 현실을 인식하는 게 우선이다. 새해에는 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는 현실을 돌파하기 어렵다. 현재 민심의 외면을 받고 있다면 왜 그러한지, 기대를 받고 있다면 왜 그러한지를 파악한 뒤 실천의 밑그림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맞이하는 새해라야 요동치는 민심의 강물을 견인하며 새로운 길을 선도할 수 있다.

2025년은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였는가. 권력의 교체, 그 자체에만 시선을 고정하면 본질을 꿰뚫어 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치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1년의 그늘은 새해에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공감보다는 배제의 언어가 힘을 받으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현실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 정치 세력을 향한 극언으로 매일 아침을 허비할 여유가 있는가. 감동도 없고, 공감도 없는 악다구니의 메아리로는 누구의 마음도 품을 수 없다. 진정 달라진 모습을 갈망한다면 새해 메시지부터 점검해 보는 것은 어떤가.

정치적 수사(修辭)로 점철된 메시지로는 민심의 공감을 기대하기 어렵다. 덕담의 나열도, 장밋빛 청사진도 공허한 말의 유희일 뿐이다. 비판 세력의 시선에서 자기를 진단한 뒤 지적받는 그것을 개선하고자 이런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게 오히려 민심의 호응을 끌어낸다.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정치인이라면 민심의 갈증, 그 본질적 이유에 다가설 수 있지 않겠는가.

정치부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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