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현기자
국내 대형 보험사의 비상위험준비금이 올해에만 4500억원 가까이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몇 년 새 대형 건물 붕괴와 기후변화에 따른 화재, 항공기 추락 등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영향이다. 이는 보험사 배당에도 악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형 손보사 5곳(삼성·DB·현대·메리츠·KB)의 올해 3분기 비상위험준비금은 7조4061억원으로 지난해 말(6조9589억원)과 비교해 6.43%(4472억원) 증가했다. 비상위험준비금은 대형사고나 천재지변 등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비해 보험사가 쌓는 적립금이다. 일정 기간 뒤 환입되는 이익잉여금의 일종으로 자본으로 분류하지만 비상시를 위해 묶어 두기 때문에 유동성이 떨어진다.
보험사별로 보면 삼성화재의 비상위험준비금은 2조8414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DB손보(1조6552억원)·현대해상(1조3305억원)·KB손보(1조1946억원)·메리츠화재(3844억원) 순으로 규모가 컸다.
비상위험준비금은 화재·해상·자동차·보증·특종·해외수재 및 해외원보험 등 6개 부문에서 거둬들인 보험료에 일정 비율을 반영해 적립한다. 해당 부문의 사고가 많아지면 손해율이 올라가고 이는 보험료 상승과 비상위험준비금 증가로 이어진다.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선 대형 사고가 잦았다. 지난해 말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사고를 비롯해 올해에도 경남 산청과 경북 의성·안동 일대 화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화재, 이랜드 천안 물류센터 화재 등이 잇따랐다.
최근엔 자동차보험 손해율 급등으로 추후 비상위험준비금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올해 1~10월 대형 손보사 5곳의 자동차보험 누적 손해율은 85.5%로 전년 동기(81.3%) 대비 4.2%포인트 상승했다. 대형사 기준 자동차보험 손해율 손익분기점(82%)을 넘어섰다. 자동차보험 비중이 낮은 메리츠화재를 제외하고 대형사 4곳의 올해 비상위험준비금은 역대 최고치를 찍을 가능성도 있다.
쌓아야 할 비상위험준비금이 늘면 보험사의 배당여력도 그만큼 줄어든다. 보험업감독규정에서는 같은 법정준비금이라도 비상위험준비금을 해약환급금준비금보다 먼저 쌓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은 고객이 보험계약을 중도 해지할 경우를 대비해 보험사가 쌓는 돈으로 최근 보험사 배당여력을 갉아먹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최근 비상위험준비금의 적립기준율과 적립한도를 최근 경험통계를 기반으로 현행화하는 내용의 '보험업 감독업무 시행세칙' 개정을 예고하는 등 부담을 낮추기로 했다. 적립기준율의 경우 자동차보험은 2%에서 1%, 보증보험은 15%에서 10%, 특종보험은 5%에서 3%로 낮추기로 했다. 적립대상 보험료의 일정비율도 자동차보험은 40%에서 35%, 보증보험은 150%에서 120%, 특종보험은 50%에서 40%, 해외수재 및 해외원보험은 50%에서 45%로 낮아진다. 금융당국은 이날까지 보험사 의견을 취합해 연말 결산 시 반영토록 할 방침이다.
다만 일부 보험사들은 배당여력 확보를 위한 추가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비상위험준비금 적립과 환입 기준을 더 완화하고 해약환급금준비금 개선도 필요하다"며 "현행대로라면 올해도 상장 보험사 과반이 배당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