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 양식장 '붕괴 직전'…16만 줄 폐사 '대응 전무'

이상 고수온 추정 속 56% 피해 발생
"전문 경보체계 사라져 속수무책" 지적

전남 완도·고흥 일대 미역 양식장이 대규모 고사 피해로 붕괴 직전에 몰렸다. 고수온으로 추정되는 이상 해양환경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종자 단계의 미역이 줄줄이 폐사했지만, 지자체의 사전 대응은 사실상 전무했다는 현장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30일 지역 어민들의 집계에 따르면 이 일대에서 양식 중인 미역 29만여 줄 가운데 56%에 달하는 16만5,000여 줄이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는 완도군 노화·금일·청산·금당 지역과 고흥군 금산면에 집중됐다.

전남 완도·고흥 일대 미역 양식장이 대규모 고사 피해로 붕괴 직전에 몰렸다. 완도군 제공

한 양식 어민은 "지난해 고사율이 20%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절반 이상이 죽었다"며 "일부 어장은 90% 넘게 폐사해 사실상 포기해야 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수온 이상 추정되지만…정확한 원인은 미궁

현장에서는 원인을 이상 고수온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역 종자를 밧줄에 이식하는 10월 초 적정 수온은 22도 내외인데, 올해는 수온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어린 미역이 정상적으로 활착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역은 찬물에서 자라는 한류성 해조류다. 가을철에도 높은 수온이 지속됐을 경우 종자 단계에서 생육이 멈추거나 줄기째 떨어지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관련 연구자료를 보면 한국 주변 해역의 표층 수온은 지난 50년간 1.23℃ 상승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전 세계 평균 상승 폭(0.48℃)의 2.6배다. 이미 기후 이상으로 인한 국내 양식 피해액이 600억 원을 넘었다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한 전문적인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어민들은 현장의 수온 변화와 생육 위험을 사전에 분석해야 할 전문 대응 체계가 사실상 사라졌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전문 경보체계 사라지면서 속수무책"

금일면의 한 양식장 운영자는 "과거에는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진이 바다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대응 지침을 제시했다"며 "업무가 지자체로 넘어간 뒤엔 전문성도, 사전 경보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상 기후 자체는 막을 수 없더라도, 조기 경보와 관리지침만 있었어도 피해 규모는 크게 줄었을 것"이라고 했다.

어민들은 수온 변화에 대한 모니터링과 사전 경보가 있었다면 종자 이식 시기를 조정하거나 다른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전문 인력과 체계적인 관측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했다는 것이다.

"지역 수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린다"

신의준 전남도의원(더불어민주당·완도2)은 최근 피해 현황 보고를 받고 전남도의 즉각적인 전수조사를 요구했다

신 의원은 "이 정도 규모의 고사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며 "정밀한 원인 규명과 복구 대책 없이 방치될 경우 지역 수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완도지역 가공용 미역 어가들을 조사한 결과, 피해율이 30~80%에 달해 단순한 어장 문제가 아닌 지역 산업 기반 위기라고 판단했다"며 "도 차원의 긴급 실태조사와 함께 전문가 투입을 통한 정확한 원인 규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가격 폭등·장기 피해 우려…"내년도 암담"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미역 가격 상승은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시마 등 다른 해조류 역시 해양환경 변화로 피해를 보고 있어 수산물 전반의 물가 압박이 우려된다.

특히 완도 어민들의 고통은 더욱 깊다. "올해 한 해 바다 양식을 완전히 망친데다, 내년 종자 확보도 불투명해 피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한 어민은 "정확한 원인도 모른 채 다시 양식을 시작해야 하는데, 같은 피해가 반복될까 두렵다"며 "전문가들이 나서서 원인을 밝히고 대책을 세워주지 않으면 미역 양식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민들은 정부와 지자체에 실질적인 재정 지원과 함께 정확한 원인 규명, 장기 해양환경 대응 체계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해양환경 변화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전문적인 모니터링부터 사전 경보 시스템 구축, 그리고 무엇보다 정확한 원인 규명을 통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호남팀 호남취재본부 이준경 기자 lejkg123@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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