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취재본부 이준경기자
23일 오전, 전남 나주 전남농업기술원. '2025국제농업박람회' 개막일인 이날, 입구부터 열기가 뜨겁다. 25개국 380여 개 기관이 참여한 글로벌 농업 축제의 현장엔 첨단 기술과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이 뒤섞였다.
"요즘은 사람이 아닌 AI가 기가 막히게 농사를 짓네"
방문객 한 명이 농기계를 바라보며 연신 감탄사를 터뜨린다. '농업미래전시관' 안, 인공지능(AI) 스마트팜에서는 센서가 작물의 상태를 실시간 분석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신품종 작물들도 관람객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농업기술관'에 전시된 고압세척기와 제설기 등의 기계를 한 관람객이 직접 작동하며 체험하고 있다. 이준경 기자
자율주행 트랙터 체험도 눈길을 끌었다. 스마트 농업 솔루션과 글로벌 프리미엄 농기계 라인업을 선보인 트랙터를 바라보던 한 농업인은 "이제는 트랙터도 스스로 일하는 시대구나"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농업기술관'에서는 농기계 기술의 진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자동차와 건물 외벽을 세척하는 고압세척기로 시연이 진행됐고, 제설기와 대형 잔디 깎기 등 다목적 농기계가 주목을 받았다. 전북드론협회가 선보인 대형 드론도 관람객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향기와 색으로 물든 전남 특산품 마당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곳은 전남 18개 시·군이 참여한 농식품관과 농축산관이었다. 화순군 전시관은 화려한 주황색 부스와 도깨비 의상의 홍보요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들은 도깨비 의상과 가발을 쓰고 "고인돌의 고장 화순, 도깨비가 나타났습니다!"며 관람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며 SNS 홍보 효과를 톡톡히 냈다. 한 방문객은 "전시보다 도깨비 요원들과 사진 찍는 게 더 인기예요"라며 웃었다.
화순군 전시관에는 도깨비 의상을 입은 홍보요원이 관람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웃음을 선사해 눈길을 끌었다. 이준경 기자
여수와 순천 부스에서는 돌산 갓김치와 꼬들꼬들한 '고들빼기'를 선보였고, 해남의 고구마·쌀베이글은 달콤한 향으로 관람객을 유혹했다. 특히 완도애협동조합이 선보인 '완도빵'은 단연 눈길을 끌었다.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촉촉하고 쫄깃해 한 관람객은 "연신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완도에서는 비파 와인·비파차·비파 식초가 '열대 과일의 도시'를 연상케 했고, 나주의 배 시식 코너에서는 "이게 바로 진짜 나주 배 맛이지"라는 탄성이 터졌다. 무안의 양파로 만든 브라운어니언 소스는 "스테이크에 뿌리면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신안의 소금아이스크림은 짭조름한 단맛으로 아이들에게 인기였다. 영암의 무화과, 구례의 산수유, 장성의 레몬은 각각의 향과 색으로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특히 장성은 "국내 유일 레몬 생산지"라는 팻말로 지역 농산물을 널리 홍보했다.
농식품관 안에는 전남 지역의 다양한 특산품과 먹거리를 선보여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준경 기자
글로벌 시장 노리는 K-농업
비즈니스전에서는 16개국 50개사의 해외 바이어들이 참가한 수출 상담회가 한창이었다. 주최 측은 "이번 박람회를 통해 K-농업이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월드푸드테크 포럼과 국제 커피 심포지엄도 예정돼 있어, 기술 교류와 협력의 장으로 기대를 모았다.
도심 속 힐링 공간, 가족 단위 방문객 북적거려
'힐링치유전'은 도시인들에게 쉼을 선사했다. 풍요의 정원과 식물원을 거닐며 사진을 찍는 가족들, 직접 고구마와 감을 캐는 체험존은 방문객들의 힐링 공간으로 북적였다. K-커피 홍보관과 반려문화놀이터에도 관람객 발길이 이어졌다.
미래의 농업을 알린 '2025국제농업박람회'는 '농업이 세상을 바꾼다'는 주제가 단순한 구호가 아님을 증명했다. 이준경 기자
"볼거리·먹거리 다 좋지만…더위에 지쳤어요"
하지만 일부 전시관의 운영 미흡은 아쉬움을 남겼다 농식품관 등의 야외 전시관은 천장과 내부가 완전히 막혀 있어 바람 한 점 통하지 않았다. 낮 기온이 높게 오르자 관람객들은 손부채를 부치며 "전시품은 좋은데 너무 더워서 오래 못 있겠다"고 불평했다. 한 노년 관람객은 "작물보다 내가 먼저 익겠다"며 웃음을 터뜨렸다가 금세 땀을 닦았다.
냉방시설은 작동하지 않았고, 일부 전시관 내부 온도는 한여름 더위를 연상케 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들은 "날씨가 더워 힘들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뒤늦게 개방한 이동식 화장실과 뒤편에 고인 물웅덩이는 방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관람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준경 기자
이동식 화장실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행사 전날 현장에 도착해 전시 준비를 하던 참가자들은 화장실이 잠겨 있어 불편을 겪어야 했다. 개막 당일에야 개방돼 한 참가업체 관계자는 "화장실을 찾는 것이 전시 준비보다 더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화장실 뒤편에 고인 물웅덩이에서는 방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관람객들이 모기에 시달리는 모습도 목격됐다.
"농업이 세상을 바꾼다"
운영상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박람회는 AI와 드론, 자율주행 기술, 우주 작물 연구 등 미래 농업의 가능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자리였다. '농업이 세상을 바꾼다'는 주제가 단순한 구호가 아님을 증명하듯, 나주에서 시작된 K-농업의 도전은 이제 세계를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