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77년만의 검찰청 폐지, 국민 피해 없나

정치가 주인공된 검찰개혁
국민보호 우선해 부작용 줄여야

"잠복도 하고, 미행도 하고, 주거 침입까지 해봤습니다."

주식리딩방 사기로 2억원을 잃은 40대 직장인 A씨는 '고소인 겸 탐정'이 됐다. 3년 전 사건을 고소했지만 진척이 없었다. 이때부터 A씨의 사적 수사(?)가 시작됐다. 등기부등본으로 피의자 재산을 추적하고, 은신처로 보이는 빌딩에 밤새 잠복해 사진을 찍어 경찰에 건넸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이건 바지사장밖에 못 잡는다." "행정사에게 실비를 지불해서라도 서류를 다시 만들어와라."

압수수색과 대포통장 추적은 늦었고, 범죄수익은 이미 세탁돼 빌딩과 차량으로 바뀌었다. 주범은 잡혔지만, 공범은 도주했다. 자문한 변호사가 가해자 측을 대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판사 전관 변호사에게 수천만 원의 수임료를 냈지만 돌아온 건 고소장 한 장뿐이었다. 수사는 지연됐다. A씨는 말했다. "경찰이 안 하니까 제가 했죠." "그런데 검찰이 없어지면 '사인소추(私人訴追)' 시대가 되는 거 아닙니까."

현장은 입체적이다. '검찰=악, 경찰=선'이라는 구도가 현실에서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격무가 심해졌다. A씨처럼 고소인들이 탐정이 된 아수라장은 '검수완박'의 현실이다. 범죄수익으로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피의자들 앞에서, A씨 같은 피해자들은 검찰권에 희망을 걸어왔다. 검찰개혁의 과녁 설정에도 오류가 있다. 전체 사건의 10%를 차지하는 특수부의 병폐를 바로잡겠다며, 90%에 달하는 형사부 사건의 수사력까지 뿌리째 뽑히게 생겼다.

본질적으로 이 개혁은 '누가 주인공'이고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분명한 건 법안이 통과돼 가장 큰 수혜를 입을 사람들이다. 다가올 지방선거와 차기 당권 경쟁을 하는 후보군이 이 이슈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검찰개혁 특위에는 내년 선거의 잠룡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에겐 '검찰개혁'만 한 비즈니스 모델, 구호, 전선, 선명성 경쟁 소재가 없다.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중대범죄수사청장(중수청장)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할 장치는 무엇인가. 행정안전부 산하 거대 사정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형사 사건의 수사력 저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중수청으로 검찰 인력이 가지 않을 경우, 수사 노하우가 축적된 금융·증권·가상자산 합동수사단 형태의 수사조직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답을 찾지 못한다면 이번 개혁은 누더기가 될 것이 뻔하다. 정부조직법과 연동된 수천 개 형사소송법 조항이 하나하나 충돌해 불협화음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과 이해당사자가 단역으로 밀려나고, 정치인만이 주인공이 되는 개혁은 실패한다. '민생 범죄 척결'이라는 기본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개혁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국민은 엑스트라가 아니다. 주인공이자 당사자다.

사회부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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