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은주기자
정부가 새로운 재정준칙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관리재정수지를 핵심 지표에서 제외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성 기금이 조만간 적자 전환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더이상 관리재정수지로는 재정 상태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워졌다는 판단에서다.
20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재정준칙을 통합재정수지 중심으로 전환하는 방안 등을 포함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들여다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회와 협의해 진행해야 하는 만큼 기재부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면서도 "관리재정수지를 반드시 써야 하는지를 포함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관리재정수지는 한국만 사용하는 독특한 재정지표다.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에서 국민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기금과 같은 사회보장성기금(국가가 법적인 지급 의무를 지닌 기금)을 제외해 산출한다. 2004년 기획예산처는 '실질적 통합재정수지'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입했는데 2013년부터 지금의 '관리재정수지'로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국민연금 기금의 흑자가 크게 쌓이면서 통합재정수지만 보면 재정이 실제보다 과도하게 건전하게 보이는 착시를 제거하기 위해 채택됐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20년 이상이 흐르면서 사회보장성기금은 적자 전환을 앞두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지는 2029년부터 적자로 전환될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사학연금은 2028년 적자 전환이 예측된다. 전체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도 악화하고 있다. 2024년 결산 기준으로 61조2000억원 흑자였던 수지는 2025년에는 18조2000억원(잠정치)으로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정부는 재정을 통제하기 위한 재정준칙에 설정할 여러 재정지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통합재정수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비교 기준이 되는 지표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작성하고 있지만 각국은 자국 상황에 맞춰 다양한 지표를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국가 채무가 많은 일본은 당해 연도의 재정 상황만을 판단하기 위해 순이자 지출을 제외하는 기초재정수지를 활용한다.
앞으로는 국제 비교 기준이 되는 통합재정수지를 중심으로 재정준칙을 작성해야 사회보장기금 적자 상황에서의 재정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는 내부 의견도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재정준칙 추진 시 활용했던 통합재정수지를 다시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사회보장성기금 흑자가 지속되던 상황에서 통합재정수지 채택은 재정건전성 관리를 느슨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져 사회보장성기금 적자를 앞둔 만큼 내부 논의와 국회 협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보장성 기금이 적자 상황에서 통합재정수지를 채택하면 향후 재정을 더 옥죄는 결과가 될 수 있어서다.
한편 최근 주요국들은 재정 확장 필요성에 따라 기존의 엄격한 재정준칙을 완화하고 있는 흐름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재정규율이 엄격한 독일은 지난 3월 나랏빚을 질 수 있는 한도 규정인 '부채 브레이크(Schuldenbremse)'를 일부 손질해 국방비는 예외로 두는 방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국방비로 나랏돈을 쓸 땐 빚을 좀 더 지더라도 재정 지출을 늘리도록 했다. 독일의 부채 브레이크는 정부의 연간 신규 부채를 국내총생산(GDP)의 0.35% 이내로 제한하는 재정 준칙이다. EU도 국방비 지출을 재정준칙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EU 재정준칙은 회원국 재정적자를 GDP 대비 3% 이하, 국가채무를 60% 이하로 유지하도록 규정하며 초과 시 제재를 가하지만, 국방비만큼은 예외로 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