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기자
"여기 너무 재밌다. 살 거리도 많고. 우리 여기서 놀자~!"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은 20대 두 여성 관람객은 마치 도시 속 숨겨진 보물을 찾은 듯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에게 국현은 문화와 쇼핑, 여가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문화 복합 문화 공간과 같았다.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는 콘텐츠와 한껏 고양된 예술적 감각과 호기심을 충족할 전시 연계 활동, 지금 순간의 들뜬 마음을 오래 두고 추억할 사진과 굿즈는 문화 배움터이자 놀이터의 요소를 맞춤하게 충족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그런 모습을 뒤에서 흐뭇하게 바라본 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김성희 국현 관장이다. 2023년 9월 취임 당시 내세운 "일반 국민이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미술관의 문턱 낮추기에 심혈을 기울인 그에게 두 여성 관람객의 기쁨은 곧 자신의 보람과 같았다. 사람과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를 유달리 좋아한다는 김 관장은 지난 14일 마주한 본 기자에게 "두 여성이 너무 사랑스럽고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며 웃음 지었다.
국현의 세계적 위상은 K-문화의 세계적 확산과 더불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그만큼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호기심을 갖고 국현을 찾고 있다. 이때 꼭 나오는 반응은 "아니 젊은 관람객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라는 감탄. 중년 이상 비중이 높은 외국과 달리 국현 관람객 연령대는 20~30대 비중이 높은 편이다. 최근 3개월간 53만명의 관람객 열풍을 일으킨 '론 뮤익' 개인전 역시 20~30대 비중이 71%에 달했다. 김 관장은 "젊은층은 시각에 예민한 세대다. 작품이 살아 숨 쉬는 동시대 예술인 현대 미술을 통해 지식이 전달되는 것에 환호하는 것 같다"며 "예쁜 사진을 남기는 것도 중요한 요소인데, 사람이 많은 와중에도 차분히 차례를 기다리더라. 관람 예절도 매우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론 뮤익 열풍을 이어갈 새로운 전시도 준비 중이다. 김 관장은 "아직 공개할 수 없지만, 아직 아시아권에 공개되지 않은 역량 있는 작가의 전시를 내년 초에 선보일 예정이다. '론 뮤익' 전시보다 더 큰 반향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론 뮤익' 개인전이 세운 경이적인 기록은 전시감상교육에서도 확인된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진행한 전시감상교육에 43만명(관람객의 80%)이 참여한 것이다. 이는 김 관장이 취임 직후 줄곧 강조한 '소통'의 성과이기도 하다. 직원 간, 부서 간 소통에 진심인 김 관장은 때마다 각 부서 직원과 직접 대화하며, 관람객에게 열려있는 전시를 주문했고, 그 결과 전시감상교육이 탄생했다. "전시를 본 뒤의 감동과 아쉬움을 달래줄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 마련한 인생을 돌아보는 시 쓰기 프로그램은 관람객의 필요를 적중했다. 김 관장은 "일반 사람들과 특별히 다를 바 없이 회사원처럼 수도승처럼 생활하고 작업하는 론 뮤익의 모습에 많은 분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그런 감동으로 인생을 돌아본 마음 뭉클한 시가 너무 많아, 조만간 책으로 엮어내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런 분들은 단순 관람객이라기보다 방문자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MMCA 리서치 펠로우십 프로그램은 김 관장이 각별히 공을 들인 K-예술 세계화 작업의 일환이다. 세계 예술 거장들의 한국살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요약하면 '오라, 보라, 가서 전하라'로 설명할 수 있다. 6개월 이상 한국에 머물면서 직접 한국을 경험하고 이를 책으로 출판해 한국 예술의 다채롭고 심오한 미(美)를 세계에 알리라는 것. 알렉산더 알베로 콜롬비아대 버나드칼리지 교수가 올해 말 한국을 찾고, 미술학자인 할 포스터 프린스턴대 교수가 2027년 방한 예정이다. 김 관장은 "한국의 단색화가 세계에서 주목받게 된 건 'Dansaekhwa'(2014) 책이 출간된 것이 계기가 됐다"며 "할 포스터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체계를 구축한 사람으로, 그들의 언어로 세계에 한국을 알리자는 것이다. 아마 전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국립현대미술관이란 한글 명칭상 근대미술은 범주 밖에 있다고 여기기 쉽지만 실제로는 덕수궁관을 중심으로 근대전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실제 국현의 영문명 MMCA(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는 근현대를 아우른다. 이런 이유에서 김 관장은 앞서 '국립근현대미술관'으로의 명칭 변경을 제안한 바 있다. 국현이 근대와 현대 미술을 모두 다룬다는 의미를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내막은 서울 송현동에 건립 예정인 이른바 '이건희 기증관' 운영과도 연관된다. 김 관장은 "국현과 가까워 주차 등 부대시설 사용이 손쉽고, 수장고와 인력풀을 모두 활용할 수 있어 효율성이 매우 높다. 바로 운영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기를 1년여 앞둔 상황. 김 관장은 "취임 직후부터 효율성과 소통을 강조해 조직을 정돈해 왔고, 많이 안정화됐다"며 "국현이란 큰 배는 방향을 0.1도만 틀어도 시간이 지나면 크게 바뀔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 손 잡고 오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