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취재본부 심진석기자
‘영광청년 일동’이 지난 8일 오전 11시 영광종합버스터미널 앞에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최근 정치 행보를 비판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독자 제공
한때 '포스트 김대중'으로 불리던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이 자신의 고향이자 정치 탯자리였던 전남 영광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호남 정치계 거물이었던 이 상임고문의 최근 이어진 정치적 행보가 지역 정서를 철저히 외면한 탓이다.
지난 14일 오전 10시30분 영광 백수읍 한 마을 앞 군 지정 게시대. 군이 운영하는 게시대인 만큼 지역을 홍보하거나 정책을 알리는 내용의 현수막들이 여럿 내걸렸지만 이 중 "이낙연은 내 고향 영광의 수치 호남팔이 그만 좀 멈춰라"는 글이 담긴 현수막은 특히 눈에 띄었다.
이 현수막은 지난 4월께부터 불과 며칠 전까지 한덕수 전 총리 등과의 '반명(반이재명)' 빅텐트 연대 행보를 이어갔던 이 상임고문을 향한 지역의 성난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영광에서 이 상임고문을 향한 불만의 현수막이 본격적으로 붙었던 시점은 지난 8일로 추정된다. 같은 날 오전 지역 20~30대로 구성된 젊은 청년들의 모임인 '영광 청년 일동' 의 이낙연 비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지역 곳곳엔 이 상임고문을 비난하는 현수막들이 붙었다는 것이 지역 주민 설명이다.
영광군 백수읍 한 마을 앞 게시대에 설치된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의 정치적 행보를 비판하는 현수막. 심진석 기자
정확한 숫자 확인은 어렵지만, 영광군 내 69개의 지정 게시대가 운영되고 있는데 최소 절반 이상의 게시대에 이 상임고문 관련 현수막이 설치됐다는 부연도 했다. 지역 민심의 동요는 정치권까지 연결됐다.
영광이 고향인 더불어민주당 정진욱 의원(광주 동남갑)은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상임고문의 비난이 담긴 한 현수막 사진과 함께 "내 고향 영광의 선배님들께서 이낙연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짤막한 글로 자신의 속마음을 갈음하기도 했다.
이 상임고문이 지난 10일을 전후로 대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보수진영과의 빅텐트 참여 철회 의사를 밝힌 이후 현수막들은 대부분 회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이날 영광 지역 내 게시대 20여곳을 방문했지만, 이 상임고문 관련 현수막은 딱 1곳만 설치된 상태였다.
이 상임고문을 향해 부정적 분위기가 일단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단 이야기도 일부서 나왔지만 지역민들에겐 여전히 잔불은 남아 있었다.
지역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다는 한 주민은 "동네 창피해서 현수막을 얼른 떼라곤 했지만 영광서 이낙연 좋아하는 사람이 있것는가"라며 우회적으로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사실 이 상임고문에게 영광은 정치적 생명을 불러일으킨 곳이다. 4번의 국회의원에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해줬고, 전남도지사에 당선됐을 때도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지난해 민주당을 탈당했을 때도 "정치적 목적이 있을 것"이라며 애써 이해하려 했던 곳이 영광이다.
무조건적인 박수를 보냈던 영광군민들이 이 상임고문에게 등을 돌린 이유는 지역 정서를 철저하게 무시한 명분 없는 정치 행보 때문이란 시선이 대다수다.
이 상임고문은 2021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재명 당시 후보의 대장동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는 이재명 후보가 현재까지 보수진영에 공격당하는 빌미가 됐다.
물론 당시엔 당내 대권 경쟁자로서 정치적 전략 차원이라는 명분 속에 애써 이해를 받았다. 하지만 이 상임고문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도 '반이재명 노선'을 이어갔다.
정진욱 의원이 자신의 고향 영광의 한 게시대에 설치된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의 비난 현수막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정진욱 의원 페이스북 캡쳐
더욱이 계엄 세력으로 분류되던 한덕수·김문수(현 국민의 힘 대선 후보) 등 보수계열과의 연대 가능성을 계속해서 시사해 왔다. 비상계엄 세력들의 통쾌한 심판을 원했던 지역 민심과는 정면으로 배치된 행보였다. "자신이 몸담았던 당과 지지자들에게 최소한의 도의마저 저버렸다"는 지적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20여년 가까이 이 상임고문을 지지했던 영광군민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영광의 자랑이었던 이 상임고문이 영광의 망신이 됐다며 자조 섞인 한탄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영광 지역 한 정계 관계자는 "이낙연이 영광에 해준 것이 무엇이 있냐는 말이 지역민들 사이에 확산해 있다"며 "받은 것 없이 그저 이낙연이 잘 되기만을 바라며 지지와 응원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재명이든 민주당이든 상관없이 반헌법적 계엄을 한 윤석열과 이를 옹호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이번 대선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이들과 손을 잡으려 했던 이낙연을 이해할 수 없다. 큰 정치인이 돼 주길 바랐지만 결국은 지만 아는 정치인이 됐다"고 일침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