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기자
젊은 시절의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에 한국관 건립을 준비하던 도중 전화 한 통을 갑작스럽게 받았다. 고(故) 이희건 신한은행 창업주(명예회장)가 2008년 10월 설립해 17년째 운영되고 있는 '이희건 한일교류재단'이었다. 재단은 "코트라의 한국관 건립에 기부금을 쾌척하고 싶다"고 했다. 이후 긴밀한 논의를 거쳐, 코트라는 재단으로부터 한국관 건립비용 3억원을 기부받았다.
재단은 "한일 협력 사업엔 적극적으로 기부해달라"는 이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기부에 나서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이 회장은 1970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엑스포에서도 우리나라가 한국관을 건립할 수 있도록 50만 달러를 몸소 보낸 바 있다. 당시 시가로 따지면 지금 돈으로 약 100억원에 이르는 돈이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 회장은 1917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지만 좋지 않았던 집안 형편 탓에 다섯 살 때 일본 오사카로 이주해서 산 재일교포 출신이다. 그는 일본 현지에서 차별과 가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동포들을 위하는 금융업에 힘을 쏟았다. 1955년 동포 상인들을 모아 오사카홍은(조합)을 설립했고 1974년 투자가 필요한 교포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본국투자협회를 설립했다. 1982년에는 자본금 250억원과 1977년에 세웠던 제일투자금융을 바탕으로 신한은행을 설립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출자금을 모아서 처음으로 국내에서 만든 순수 민간자본 은행이었다. 당시 신한은행 영업점은 4개, 직원은 274명이었다. 이 회장은 신한은행 영업을 통해 모은 재산을 모국과 우리 동포들을 위해 아낌없이 썼다. 1988년 우리나라가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려는데, 정부가 엄청난 사업비로 고민하자 재일교포들과 함께 성금 100억엔을 기부했다.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을 때는 동포들과 함께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돈을 보내는 송금 운동을 주도했다.
일본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한국관 내 전시를 다 보고 출구로 나오면 '재일동포 기념 벽'이 전시돼 있다. 이 벽에는 재일동포들의 역사와 현황 등이 우리말, 일본어, 영어로 정리돼 있다. 사진=김형민 기자
일본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한국관 내 전시를 다 보고 출구로 나오면 '재일동포 기념 벽'이 전시돼 있다. 이 벽에는 재일동포들의 역사와 현황 등이 우리말, 일본어, 영어로 정리돼 있다. 사진=김형민 기자
코트라는 이러한 이 회장의 업적을 되새기고 재단의 기부에 의미를 더하기 위해, '재일동포 기념 벽(Wall)'을 만들어서 한국관에 전시했다. 벽에는 재일동포들의 역사와 현황 등이 우리말, 일본어, 영어로 새겨졌다. 이 회장에 대해선 "한일 양국 간 지속적인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이희건 한일교류재단'을 설립하고 학술·문화·경제 교류를 지원해왔다"고 소개했다.
강경성 코트라 사장은 지난달 13일 한국관에 열린 벽의 제막식에서 "조국이 어려울 때마다 재일동포분들께서 보여주신 따뜻한 손길을 잊을 수 없다. 특히 고 이희건 명예회장님께서 설립하신 이희건한일교류재단은 양국 간 문화·경제 교류의 가교로서 지속적인 이해와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며 "올해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한일 관계가 미래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점에서 재일동포 여러분이 과거와 미래를 잇는 소중한 연결고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