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별거한 남편 사망…법원 '아내 유족연금 받아야'

남편 감염성 질환으로 10년 넘게 따로 생활
"배우자 유족연금 지급은 결혼 여부만 따져야"

남편의 감염성 질환 때문에 10년 넘게 별거한 아내에게 유족연금을 줘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3일 인천지법 행정1-1부(김성수 부장판사)는 A씨가 국민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연금 수급권 미 해당 결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이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30여년 전 결혼한 중년 여성 A씨는 2009년부터 남편 B씨와 별거했다. 이들 부부는 B씨의 감염성 질환 때문에 별거를 선택했지만, 부부의 연을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B씨가 혼자 살았던 집도 원래 부부가 살던 집에서 차로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 마련했고, A씨가 남편의 식사뿐 아니라 빨래와 집 청소 등도 챙겼다. 이들 부부는 자녀 결혼 때와 친인척의 장례식에도 함께 참석했다. B씨는 10년 전까지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벌어 자녀들뿐 아니라 아내도 부양했다. 그는 지난해 3월 사망 직전까지도 딸 계좌로 생활비 일부를 보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남편의 사망 후 A씨는 남편이 숨지기 전까지 받던 노령연금을 근거로 국민연금공단에 유족연금을 신청했다. 유족연금은 공적연금 수급권자가 사망하면 유족이 생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지급하는 연금 급여로, 사망한 기존 연금 수급권자의 배우자, 25세 미만 자녀, 60세 이상 부모 등이 받을 수 있다. 다만 가출이나 실종 등 명백하게 부양 관계가 없는 사이로 확인되면 유족연금을 받을 수 없다.

국민연금공단은 위원회 심의를 거쳐 "(A씨 부부의) 생계유지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A씨는 유족연금 수급권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A씨는 국민연금공단의 결정이 부당하다며 지난해 8월 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다. 그는 소송 과정에서 "남편의 감염병 등으로 별거했다"면서 "남편이 사망할 때까지 계속 서로 왕래했고, 부부가 생계를 같이 꾸렸다"고 주장했다. 또 "국민연금법에 따른 배우자로서 유족 연금 수급권자에 해당한다"며 "국민연금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고도 했다.

법원은 A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유족연금 수급 대상자 가운데 배우자는 사실상 혼인 여부만 따져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재판부는 "유족연금은 자신이 보험료를 내고 그에 따른 (연금) 급여를 받는 게 아니라 결혼이나 (생계) 의존성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파생 급여"라면서 "의존성 여부에 따라 유족연금 지급 여부가 결정되는 다른 유족의 경우와 달리 배우자에게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결혼 여부만 따져 지급을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국민연금공단이 지난해 6월 A씨에게 한 처분을 취소하고 소송 비용도 모두 부담하라고 명령했다.

이슈&트렌드팀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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