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물가 안정, 작은 코로나 충격·양호한 노동공급·정책 공조 덕분'

한은 '팬데믹 이후 주요국 인플레이션 경과 비교 및 시사점'
우리나라, 주요국보다 일찍 물가 목표 도달해
"물가 수준은 여전히 높아…취약계층 선별적 지원 필요"

우리나라가 주요국보다 빠르게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었던 건 상대적으로 작은 코로나 충격과 양호한 노동공급,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간의 원활한 공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민족 대명절 추석을 앞두고 있는 5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사과 선물세트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1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팬데믹 이후 주요국 인플레이션 경과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국은 디스인플레이션이 더디게 진행됐던 '라스트마일'을 지나 물가 목표 수준에 근접하며 물가 안정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팬데믹 이후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국면은 ▶초기 상승기(2020년 말~2021년 상반기) ▶급등기(2021년 하반기~2022년 상반기) ▶디스인플레이션기(2022년 하반기~2023년 상반기) ▶수렴기(2023년 하반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한국을 포함해 미국, 유로 지역 모두 수렴기에 진입한 상태다.

우리나라는 팬데믹 이후 주요국보다 물가 목표 수준(2%)에 더 일찍 도달했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7월 6.3%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달 1.5%까지 떨어졌다. 반면 미국 CPI 상승률은 2022년 6월 9.1%로 정점을 기록한 뒤 내렸지만 지난달 기준 2.7%에 머물러 있다. 유로 지역의 CPI 상승률은 2022년 10월 10.6%까지 오른 뒤 지난달 2.3%까지 내렸다.

우리나라의 빠른 물가 안정세는 서비스 물가의 둔화세가 상당 부분 기여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의 하락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국 모두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비근원물가)이 크게 둔화됐다. 근원상품 가격 또한 공급망 개선, 수요 둔화에 힘입어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물가는 우리나라가 하향 안정세를 보이며 목표 수준에 근접한 것과 달리 미국과 유로 지역은 여전히 4~5%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은은 우리나라가 물가 목표에 더 일찍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로 ▶상대적으로 작았던 팬데믹 충격의 영향 ▶양호한 노동 공급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공조를 꼽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전기,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 자제와 유류세 인하 조치 시행 등의 정책 지원으로 초기 공급 충격의 영향을 완충했다. 수요 측면에서도 재정지원 규모와 가계의 누적 초과 저축이 주요국 대비 작아 물가 압력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양호한 방역상황으로 인해 팬데믹 초기 노동 공급 감소폭도 비교적 작았고, 여성과 고령층을 중심으로 노동 공급이 빠르게 회복된 점도 물가 안정에 기여했다. 이는 주요국이 팬데믹 때 노동 부족을 겪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노동시장발 물가 압력을 가늠할 수 있는 단위노동비용의 오름세는 미국, 유로 지역에 비해 빠르게 둔화됐고 기대인플레이션도 비교적 안정됐다.

이에 더해 주요 선진국보다 이른 2021년 8월부터 금리 인상을 시작하고, 2023년 1월까지 두 차례의 빅스텝을 포함해 총 10회, 300bp(100bp=0.01%포인트) 금리를 인상하면서 인플레이션에 적극 대응했다. 정부도 팬데믹 초기 대응 이후 건전재정 기조로 빠르게 선회하면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간 정책 공조도 잘 이뤄진 것으로 평가된다.

한은 관계자는 "향후 위기 발생 시에도 충격을 조기에 식별하고 유연한 정책으로 대응해 나가면서 경제의 회복탄력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금리 인상 등 불가피한 비용이 있었던 점, 물가상승률은 안정되었더라도 물가의 수준은 상당히 높아져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고금리·고물가에 취약한 계층에 대해 선별적 지원은 지속해 나갈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물가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을 점검해 나가야 한다"며 "지정학적 리스크, 이상기후 등 공급측 충격이 상시화되고 있는 데다 고령화, 분절화, 인공지능(AI) 확산 등도 가속화되면서 인플레이션의 구조적 변화와 장기적 수준에 대한 연구 필요성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경제금융부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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