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다연기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한희철 군 의문사 사건' 등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4일 진실화해위는 제92차 위원회에서 '한희철 군 의문사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하고 진실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군 의문사 사건은 보안사령부 주관으로 강제징집 밀 정상 입대한 사병 중에 학생운동 전력자들을 대상으로 1982년 9월부터 사상개조 및 학생운동에 대한 프락치 활동 강요 공작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 등으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을 말한다.
해당 사건은 진실규명대상자 고(故) 한희철씨가 1983년 12월 5일부터 9일까지 '녹화 공작' 심사와 가혹행위를 당하고 12월 10일 자대로 복귀한 후, 다음날인 11일 새벽 경계근무 중 사망한 사건이다. 한씨는 다음날인 12월 12일 보안사령부의 추가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당시 보안사의 '녹화 공작'은 1982년 9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집행됐는데, 이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와 폭력이 동반돼 사망 등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촉발해 반인권적 시책으로 알려진다. 이에 진실화해위는 "철저한 관리와 감독이 요구됐으나 국방부와 보안사 등 국가의 직무유기와 방임이 있었다"며 "병역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던 한희철을 죽음으로 몰고 간 국가적 타살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기록원 등 국가기관에서 확보한 사건 관련 기록물, 신청인과 참고인 등의 진술을 통해 기존 조사 결과와 다른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녹화 공작' 심사의 진행 과정에서 보안사의 프락치 활용 시도 여부에 대해 기존 조사에서는 판단하지 않았으나, 이번 진실화해위에서는 보안사령부에서 한씨를 프락치로 활용하려고 했던 것을 확인했다.
한씨의 사망 이후 1984년 3월부터 1989년 4월까지 약 6년간 유가족에 대해 사찰하는 등 유가족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사실도 추가로 확인했다. 한씨 사망 후 군과 보안사는 가혹행위 흔적을 은폐하고자 시신 매장을 주장하는 유가족에게 ‘군의 상례’라며 화장을 설득하고, 유가족이 관을 열거나 시신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한씨는 녹화 공작 심사 기간 동안 매일 2시간 이상 구타를 당했고, 폭행 도구로는 70~80㎝의 곤봉 외에 스테인리스 줄자가 이용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는 국방부와 보안사(현 국군방첩사령부)에 국방의 의무를 악용해 중대한 인권을 침해한 사실에 대해 진실규명 대상자와 유가족에게 사과를 권고했다. 또한 불법적인 '녹화 공작'으로 피해를 당한 당사자와 유가족들의 피해에 대해 배상·보상과 명예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 및 병역의무 이행과정에서 정권 유지 등의 사유로 부당한 인권침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이외에도 3·15의거 시위 참여 확인 사건, 고(故) 김두황 군 의문사 사건 등 4건의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