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선기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인공지능기본법(AI기본법) 등 첨예하게 갈리는 현안을 두고 큰 논의 없이 법을 의결하고 있어 '졸속 처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계속되는 청문회와 전체회의 등에 일부 의원실은 과부하에 걸려 정책을 꼼꼼하게 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하소연도 나오고 있다.
25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1일 열린 과방위 법안소위원회(법안소위)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측은 과기부 장관에게 AI 사업자에 대해 사실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제40조 조항을 추가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과기부 소속 공무원이 AI 사무소와 사무장을 출입해 장부와 서류 등을 조사할 수 있다. 과기부 측은 의원들에게 "딥페이크 범죄 등 문제 발생 시 조사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일 추가된 법 조항이었지만 의원들은 별다른 논의 없이 이 조항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과방위는 오전 10시에 열려 5시간 만에 산회했다. 과방위 법안소위가 논의 이후 의결한 법안은 쟁점이 많은 AI기본법과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디지털포용법 등이다.
이와관련해 과방위 법안소위에서 AI기본법을 졸속 처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여러 군데서 나오고 있다. 과방위 법안소위에서 AI기본법을 처리하기 이전에 여야 의원은 지난 9월 3일 단 한 차례만 관련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방위 법안소위의 AI기본법 의결을 두고 "바로 처리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이 과방위 내부에서 나오는 이유다. 사실조사 권한을 정부에 부여하는 조항에 대한 우려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과방위 소속 의원의 한 보좌관은 "국가가 원할 때 기업을 마구잡이식으로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 것"이라며 "상당히 강한 규제라 AI 관련 산업의 진흥이라는 AI기본법의 취지와 어긋나는데, 논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시민단체에서는 AI가 사회에 가져올 수 있는 해악에 대한 제동 장치를 국회가 마련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인간의 존엄이나 평화, 안전 등을 해치는 AI 기술과 제품을 의미하는 '금지 AI'에 대한 제재를 이번 AI기본법에 담지 않은 건 국회의 책무를 방기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22일 성명을 통해 "제정법을 만들면서 투명하게 공개되지도 않은 한 두 번 심사로 충분한 논의가 가능했을지 의문"이라며 "21대 국회서 논의 거쳐서 충분하다는데 당시엔 안건 상정에 대한 위원장의 선언과 몇 번의 질의응답이 전부"라고 밝혔다.
AI기본법은 향후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필요성이 제기됐다.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한 기술인 동시에 발전 방향이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도권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AI 관련 법을 만든 다른 국가에 비해 숙의 과정이 짧은 것은 사실이다. 유럽연합은 지난 5월 AI법(AI Act)을 최종 승인해 이달부터 시행하고 있다. 법이 마련되기까지 오랜 숙의 과정을 거쳤다. EU 집행위원회가 2021년 4월 AI법을 처음 제안한 이후 유럽의회는 챗GPT 등 관련 이슈가 생길 때마다 법을 수정했다. EU 집행위원회와 EU 이사회, 유럽의회는 6개월간 협의를 거쳐 지난해 12월 정치적인 합의안을 도출했다.
과방위가 과부하 상태에 걸려 제대로 된 법 제정 논의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방위 법안소위가 열리기 전, 지난 18~20일 과방위는 박장범 KBS 사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했다. 몇몇 의원실은 박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마치고 나서야 밤새우면서 과방위 법안소위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B 보좌관은 "과방위가 방송통신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방송의 공정성 문제를 다루는 곳이다 보니 정쟁적 요소가 쉽게 끼어든다"며 "정책은 뒷전인 환경"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