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현기자
금융당국이 최근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개선안을 발표한 이후 일부 보험사들이 당국이 제시한 원칙모형이 아닌 예외모형을 선택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자 금융감독원이 제동에 나섰다. 예외모형을 선택하면 경우에 따라 내년도 우선 검사대상 보험사로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은 11일 이세훈 수석부원장 주재로 '금리 하락기의 국제회계기준(IFRS17) 안정화 및 보험사 리스크관리'를 주제로 주요 보험사 및 회계법인 경영진과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IFRS17 관련 혼란과 제도개선에 따른 영향, 금리하락에 따른 보험사 건전성 등에 대한 업계 의견을 듣고 당부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마련됐다.
금감원은 IFRS17이 단기실적 경쟁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자정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개선 관련 당국의 원칙모형 제시에도 일부사가 단기 실적악화를 우려해 예외모형을 선택할 것이라는 언론의 의구심이 크다"면서 "시장에서는 이번 사안을 보험권 신뢰회복의 이정표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는 만큼 당장의 실적악화를 감추기 위해 예외모형을 선택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7일 '국제회계기준(IFRS17) 주요 계리가정 가이드라인'을 통해 무·저해지 보험상품 해지율에 관한 '원칙모형'(로그-선형모형)을 제시했다. 원칙모형은 보험사들이 기존에 사용했던 해지율 가정을 보수적으로 개선한 것이다. 다만 당국은 원칙모형 대신 보험사 고유의 통계에 기반한 예외모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 합리적인 통계 제시와 현장점검 등 금감원의 엄격한 기준을 따라야 한다. 당국이 원칙모형을 따르도록 권고한 것인데 일부 보험사들이 예외모형을 선택하겠다고 밝히자 압박 수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내년도 우선 검사대상 선정 기준으로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추정 시 원칙모형이 아닌 예외모형 적용회사 중 원칙모형과의 보험계약마진(CSM) 차이가 큰 회사 ▲불완전판매 등 소비자피해를 유발하는 판매채널에 대한 영업 의존도가 높은 회사 ▲2025년도 경영계획 수립 시 수입보험료 등 외형성장률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한 회사 등을 제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단기실적 경쟁을 위해 비합리적인 계리 가정을 적용해 보험회계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해치는 보험사가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의 이같은 방침에 대해 보험사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A보험사 관계자는 "회사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데 원칙모형만 쓰라는 식으로 강요하는 건 IFRS17의 기본 전제를 뒤집는 얘기"라며 "당국이 원칙모형을 고수하는 특정 보험사의 입김에 크게 휘둘린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들린다"고 말했다. B보험사 관계자는 "지난 7일 금융위가 해지율 개선안을 발표했을 때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예외모형을 써도 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금감원이 원칙모형만 쓰라는 식으로 압박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라며 "금융당국의 엇박자에 보험사들만 휘둘리는 꼴이고 이는 보험회계의 신뢰도에도 악영향"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간담회에서 금감원은 자산부채종합관리(ALM) 강화와 자본확충 등 선제적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고도 언급했다. 과거 금리 변동기마다 보험업권 재무건전성이 악화되는 현상이 여러번 반복됐음에도 시장리스크 관리가 여전히 미흡한 측면에 대해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듀레이션(투자금 대비 원금 회수 기간)을 적절히 매칭한 보험사는 금리하락 시에도 지급여력비율(K-ICS·킥스) 영향이 미미하거나 오히려 개선됐다"면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참석자들은 IFRS17 도입으로 금리변동에 따른 보험부채 영향이 커진 상황에서 지난 2년간 변동성 확대가 경영상 어려움으로 작용했다고 평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리스크관리 소홀, 건전성 악화, 규제유예라는 악순환이 끊어질 수 있도록 지난 보험개혁회의 결정사항을 차질없이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