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삼성전자 위기론, 책임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2019년 HBM 개발 중단한 결과
혁신 이끌어야할 최고경영진 책임
JY회장 10년 능력·성과 보여줘야

삼성전자 위기론이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대한 위기 진단과 처방에 대한 논의가 쏟아진다. 흔히 경직되고 관료화한 조직문화 속에 사라진 기업가 정신이 지적된다. 의사결정은 느리고 단기 성과에 급급한 보신주의 속에 성과가 의심스러운 사업은 미뤄지거나 아예 추진되지 않는다. 인사 쇄신과 혁신을 통한 경쟁력 회복에 대한 주문이 많다.

그러나 시간을 조금만 돌려보자. 올해 들어 7월까지 증권사들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17% 상향 조정했다. ‘왕의 귀환’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낸 곳도 있었다. 증권사들은 삼성전자의 주가가 7만원대로 내려간 뒤에도 11만원대 목표주가를 유지했다.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로 인한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곳이 많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지금 개혁이 시급하다며 비판받고 있는 삼성의 내부 문제들은 최근에 갑자기 발생한 게 아니다. 수익성에 우선순위를 두고 재무적 관점을 중시하는 삼성의 경영방식은 오래된 일이다. 조직 간의 의사소통은 단절된 채로 위험을 기피하고 선례만을 찾으며 외부 환경의 변화에는 둔감한 이른바 대기업병이나 지배구조에 대한 지적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고 대기업병이 심각하다면 삼성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다른 기업들은 지배구조 문제가 없고 대기업병과 무관한가.

지금 삼성전자가 직면한 어려움을 단순하게 정리한다면 삼성전자 경영진이 2019년에 HBM 개발을 일시 중단한 결과다. 지난 3분기 삼성전자의 메모리 부문 영업이익은 3조8000억원에 그쳤다. 반면에 SK하이닉스는 7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을 앞질렀다. 그러나 이런 결과가 SK하이닉스에는 대기업병이 나타나지 않았고 기업문화는 도전적이었으며 지배구조 문제는 해결됐기 때문인가.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 매출 79조원에 영업이익 9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연간 영업이익은 39조원에서 40조원 사이로 예상된다. 반도체 호황기로 불리는 2017년의 53조원이나 2018년의 59조원과 비교하면 당연히 아쉽지만, 크게 실망할 수준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현재의 시장 상황을 놓고 평가하자면 삼성전자에 대한 위기론은 과장됐다.

물론 초격차는 사라졌고 경쟁은 치열하며 삼성전자는 시장을 주도할 기회를 놓쳤다. 상황은 어렵고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그렇다고 기대를 접어야 하는 정도라고는 할 수 없다. 삼성전자가 HBM 기술에서 뒤처지고 최첨단 시스템 반도체의 생산 수율이 낮다는 기술적 문제는 사실 외부적으로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삼성의 문제는 복잡하지 않다. 결국 경영진의 책임이다.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 기업문화가 문제라면 최고경영진은 그런 기업문화를 바꾸고 의사결정 체계를 단순화하며 혁신을 주도할 수 있어야 했다. 문제의 핵심은 최고경영진의 능력이다. 등기임원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선대 회장이 쓰러진 2014년 이후 사실상의 총수 역할을 이미 해왔다. 10년이 지났고 이제 능력과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시점이다.

지난 10년 동안 삼성전자의 매출 증가율은 달러 기준으로 연평균 1%에 불과했다. 그 이전 15년 동안에는 연평균 17%를 넘었다. 아내와 자식을 빼고 모두 바꾸라고 했던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은 51세였고, 직원들 앞에서 휴대전화 15만대를 쌓아놓고 불태웠던 1995년에는 53세였다. 이재용 회장은 올해 56세다.

김상철 경제평론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