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세대]⑤전문가들 '김정은의 '극장' 무너뜨릴 것'

안보·통일·인권 전문가의 '장마당세대' 분석
통제 안 먹히는 세대, 김정은의 '아킬레스건'
젊은 세대 동요…'새 변수' 떠오른 군대 파병

편집자주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연일 방벽을 쌓아 올리면서 북한을 자기만의 요새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더 강력한 균열은 이미 내부에서 시작됐다. 배급제가 무너진 시절 나고 자란 청년 세대에게 '수령님'이 인민들을 지켜줄 거란 믿음 따윈 없다. 당을 위해 희생하기보다 '나'를 위해 살겠다는 이 청년들은 충성 대신 자유를 갈망한다. 70년 넘게 굳어진 김씨 일가의 독재를 뒤흔들 변화의 잠재력, 장마당세대에 대해 알아본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체제 순응도가 낮은 장마당세대를 장악하려 이른바 '3대 악법'을 만들었다. 개방과 변화 대신 자신에 대한 우상화를 더 강화하는 모습이다. 여러 전문가는 이런 선택을 악수(惡手)로 평가했다. 장마당세대가 '김정은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최근 수년간 악법들을 제정했다.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2021년 청년교양보장법, 2023년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묶어 김정은 시대의 3대 악법이라고 칭한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도 겪어보지 못한 문화적·사상적 탄압에 나섰다.

박원곤 "김정은 시대의 악법들, 체제 위기 방증"

2008년 서울에서 열린 집회에서 중국 정부의 탈북민 강제북송을 재현하는 모습.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 같은 악법들이 공포된 사실만으로도 김정은 위원장이 장마당세대를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는 신호라고 짚었다. 그는 "헌법보다 수령의 말 한마디가 위력적인 북한에선 법안을 제정해도 따로 공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법을 알리는 순간 당국이 어떤 문제에 봉착했는지 알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법치국가라면 헌법이 최상위 기준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북한은 헌법 위에 노동당 규약이 있고, 그보다 우위에 수령의 교시가 있다. 즉 법안 제·개정은 상징적 조치일 뿐이다. '남한 드라마를 유포할 경우 최대 사형에 처하겠다'는 법을 공포하는 순간, 주민들은 '나만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게 아니라 다들 그렇게 하는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모든 외부 사조를 통제·차단하려는 북한의 통치 방식을 '극장 국가'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극장 안에 모든 사람들을 몰아넣고 상영해주는 영상만 보도록 한다는 것이다. 주민에게 하나의 사상만 주입하기 위해 모든 외부 영향을 차단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북한이 철저한 정보 통제에 나서는 건 '공동지식의 형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장마당세대의 등장으로 '김정은의 극장'이 흔들리고 있다"며 "도전적이고 문화적 욕구가 강한 젊은 세대는 김정은이 더 큰 도전에 직면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조한범 "위협적인 도전, 한마디로 아킬레스건"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주민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건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같은 통제라 해도 비교할 수 없는 후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거와 달리 문화적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위협적인 도전 세력'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 석좌연구위원은 지난해 10월 탈북한 젊은 여성의 사례로 장마당세대의 특징을 소개했다. 그는 "(해당 탈북민은) 북한에서 염색도 하고 다녔고, 남한에 도착한 뒤에는 북한에서 보던 드라마 마지막 회 내용부터 물었다고 한다"며 "과거와 같은 '통제'가 먹혀들 리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념이나 체제에 대한 충성보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장마당세대에게 문화적 개방이 아닌 사회주의적 통제 강화라는 악수를 두고 있다"며 "김정은과 젊은 세대의 '케미(chemistry·궁합)'는 갈수록 엇박자를 낼 것이다. '김정은의 아킬레스건'이 될 세대"라고 평가했다.

다만, 장마당세대가 가까운 미래에 당장의 '체제 붕괴' 같은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가능성의 발현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것.

조 석좌연구위원은 "북한 주민들은 폐쇄된 사회에서 '시민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했다"며 "정치적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정권이 무너진다 해도 당장 민주주의가 정착하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아주 성공적인 민주화 케이스를 갖고도, 여전히 정치 환경이 혼란스럽지 않느냐"며 "독일의 통일도 동독 주민들의 변화를 장기적 관점에서 기다리고 대비한 결과"라고 했다.

이영환 "장마당세대, 그 너머…사상 통제 불가"

최근 북한에선 파병으로 젊은 세대의 동요가 심화하고 있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전해진다. 가족에게 파병 사실을 알리지 않고 군인들을 보냈지만, 점차 소문이 퍼지면서 추가 파병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파병으로 국제사회를 뒤흔들었지만, 장마당세대의 낮은 체제 순응도가 맞물려 오히려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장마당세대, 그다음에 나타날 세대에 주목했다. 이제 막 군에 입대했을 10대 중후반으로, 다가올 청년세대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장마당세대가 자본주의를 경험하면서 당국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분리됐다면, 지금의 10대는 사상적·문화적 측면에서도 확고한 분리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예컨대 과거에는 군대가 열악하다 보니 병약해진 군인들이 '집에 가서 잘 먹고 회복할 수 있도록' 휴가를 썼다"며 "요즘 어린 군인들은 휴가를 내고 집에서 밤새 한국 드라마를 본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장마당세대의 신체적·체력적 조건이 불리하다는 문제를 떠나, 사상적으로 완전히 허물어진 젊은 군인들을 전장으로 내보내는 건 '김정은 스스로 명을 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최근 남과 북의 경계에 방벽을 쌓는 김정은을 보면서 '이제는 정말 방법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가장 최악의 선택으로 붕괴 시간표를 앞당기고 있다"고 했다.

글 싣는 순서
①'북한판 MZ' 변화의 중심에 선 사람들②'취약한 체제' 이러다 남북 인종 달라진다③탈북한 뒤 '국군' 꿈꿨다는 보위부 장교④턱수염과 찢어진 청바지, 北 소녀 흔들다<b draggable="false">⑤전문가 제언 : 장마당세대가 가진 잠재력

정치부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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