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기자
삼성전자가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4주기를 맞은 이재용 회장이 2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이목동 ‘가족 선영’을 찾아 4년 전에 했던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능가함) 다짐을 되새긴다.
이 회장은 이날 오전 가족들과 회사 경영진, 관계자들과 이 선대회장이 안장된 선영에 모여 고인의 넋을 기린다. 이 회장은 추모식을 통해 책임 경영을 통해 회사 위기를 극복하겠단 의지를 다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반도체 신화’를 이룩한 이 선대회장과 비교되며 어느 때보다 ‘승어부’에 강한 압박을 받는 모양새다. 이 회장은 2020년 12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승어부’를 언급하며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아버님께 효도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추모식이 끝난 후 이 회장은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삼성인력개발원 내 창조관으로 자리를 옮겨 사장단과 오찬을 가졌다. 창조관은 신입사원의 교육장이자 선대회장의 흉상이 설치된 장소다. 지난해에도 이 회장은 추모식 후 이곳에서 경영진과 오찬을 했다. 추모식에 참석하며 별다른 메시지를 내놓지 않은 이 회장이 이 자리에서 회사의 위기 상황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 가능성이 있다.
다만 회사 안팎에선 이 회장이 취임 2주년을 맞는 27일에 별도의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더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밑바탕에는 책임 경영의 차원에서 지금은 이 회장이 메시지를 내고 위기 극복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깔려 있다. 메시지를 낸다면 ‘초격차 기술력’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고 주요 분야에서 시장을 선점하려는 적극적인 투자와 도전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2022년 회장 승진에 앞서 가진 계열사 사장단 오찬에서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며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회사는 반도체 분야에서 촉발된 위기론으로 차갑지만, 이 선대회장의 뜻을 기리는 추모 열기만큼은 올해도 식지 않았다. 당초 재계에선 삼성전자의 ‘반도체 위기론’이 부각되는 만큼 이 선대회장의 4주기 추모 행사 역시 축소된 규모로 조용히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실제 행사는 예년과 비슷하게 열리는 분위기다.
이날 추모식에 앞서 전날 오후에는 경기도 용인시 삼성전자 인재개발원에서 이 선대회장의 4주기를 추모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이 회장 등 유족, 삼성 사장단 및 임직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생전 사회에 대한 '봉사와 동행'을 중요시했던 이 선대회장의 뜻을 되돌아보는 행사도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열렸다. 서울대병원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이 '함께 희망을 열다, 미래를 열다'란 이름으로 행사를 열어, 2021년 이 선대회장의 기부로 시작된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 성과를 돌아봤다. 이 사업은 이 선대회장의 기부금 3000억원으로 시작해서 현재까지 소아암 사업에 1500억원, 소아 희귀질환 연구에 600억원, 크론병 등 희귀질환 환아 지원에 900억원이 쓰였다. 이 사업을 통해 진단을 받은 소아암·희귀질환 환자는 9521명, 치료를 받은 환자는 3892명에 이른다. 이 행사에도 이 회장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