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불똥 튄 '바이오 투자' VC…'임상 진행 어려워'

바이오벤처·VC "전공의 없으니 임상 막막"
국내 3분기 임상 시험, 전년比 22%↓

# 지난해 말 서울의 한 대학기술지주회사로부터 출자받아 출범한 교수창업 바이오 회사는 최근 임상시험 시작일을 거듭 늦추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연구실에 교수가 남아 있다고 해도, 전공의들이 파업으로 빠져나가면서 진행이 어렵다"며 "그래도 이미 임상을 시작했다가 멈춘 곳들보단 사정이 낫다. 시험이 중단돼도 임상시험수탁기관(CRO), 임상시험 코디네이터(CRC) 등에 계속 돈이 나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공의 집단 파업에 따른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의료·바이오 스타트업과 관련 벤처캐피털(VC) 업계에도 불똥이 튀었다. 연구개발(R&D) 및 투자 기반이 흔들릴 수 있는 만큼 바이오 업계에선 의정갈등의 빠른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공의 사태 해결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휴진에 돌입한 지난 6월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환자와 환자 가족이 의료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전공의 나가고, 남은 의사는 번아웃…이젠 교수도 투쟁"

앞서 정부는 지난 2월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증원하겠다'라는 방침을 밝혔고,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내고 의료현장을 떠났다. 이들은 "내년 의대 증원을 전면 백지화하라"라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정부와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임상 의뢰 바이오 벤처와 투자 VC의 피해로 이어졌다. 통상 신약·의료기기 등 개발은 대학병원에서 이뤄지지만 대규모 의료 공백으로 임상 과정이 줄줄이 중단 또는 연기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전후로 바이오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온 모 VC 대표는 지난 4일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대형병원은 전공의가 없으면 임상을 진행하기 어렵다"며 "갈등 초반엔 남은 의대 교수들이 '번아웃(탈진)'을 호소하면서 임상시험 속도가 느려졌는데, 이젠 그 교수들마저 투쟁 대열에 합류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시험 대상이 되는 환자를 등록하는 일도 어렵다. 특히 주사제는 입원 및 수술 환자에게만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데, 의료 대란 속에서 대상 환자 수를 채우지 못하고 임상 재평가 기간 연장을 요청한 사례도 나왔다. 임상시험 트랙이 시작되고 실험 참가자가 들어오면 구조상 비용 지출도 멈출 수 없다. 전체적인 과정에 진척이 없다고 해도 환자 관리 등 작업을 맡기로 계약한 CRO와 CRC엔 고정비가 계속 나가게 된다.

"국내 임상시험 줄고, R&D 자금 해외로…갈등 빠르게 해소돼야"

의정갈등 고착화에 따른 바이오·의료 산업 임상시험 감소는 통계로도 확인됐다. 지난달 30일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식약처 자료 분석 결과, 지난 1분기 262건이었던 임상시험 승인 수는 2분기 236건, 3분기 223건으로 3분기 연속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3분기에 250건을 기록하며 2022년 동기보다 23.8%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임상시험 중 국내 개발 건수와 비중이 줄면서 R&D 자금이 해외로 유출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2분기 국내 임상시험 승인은 156건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22% 감소했다. 2021년 코로나19 사태 당시 전체 임상시험 중 69%(924건)가 국내에서 이뤄졌지만, 올해는 3분기까지 국내 비중이 63%(454건)에 그쳤다.

R&D 지연은 고금리 영향으로 침체기를 겪은 바이오 산업의 반등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근 미국발 기준금리 빅컷(기준금리 0.50%포인트 인하)으로 성장주인 바이오 산업이 회복기를 맞이할 것이란 글로벌 자본시장의 기대감이 확대된 상황이다. 한국VC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바이오·의료 신규 VC 투자도 420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4.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 신규 투자 비중은 ICT 서비스(32.1%)에 이은 2위(15.7%)였다.

안 의원은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며 연구 교수들이 응급실로 차출되는 등 R&D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며 "바이오 산업의 경쟁력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라도 의정갈등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VC 업계 관계자도 "각 신생 바이오 회사들은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까지 투자를 받는다"며 "병원 안정화가 늦어질수록 성과가 나올 때까지 기간도 더 늦어지고, 투자받은 돈이 의미 없이 줄줄 새는 신생 회사나 투자회사의 실적도 더욱 악화하게 된다"고 전했다.

증권자본시장부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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