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권해영특파원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 위기가 고조되는 등 중동 정세가 요동치면서 국제유가가 5% 넘게 급등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란으로부터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과 이란 석유 시설 공습을 포함한 보복 대응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히자 '오일쇼크' 공포가 확산했다. 국제유가가 100달러 시대를 향해 다시 치달을 경우 11월 대선을 한 달여 앞둔 바이든·해리스 행정부에 큰 부담을 주는 복병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3.61달러(5.15%) 급등한 배럴당 73.71달러에 마감했다. 글로벌 원유 가격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12월 인도분은 3.72달러(5.03%) 뛴 배럴당 75.64달러에 장을 마쳤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보복 공격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유가가 치솟았다. 그는 이날 플로리다와 조지아주 허리케인 피해 지역 방문을 위해 출발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이스라엘의 이란 석유 시설 공격을 허용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논의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스라엘에 허가가 아닌 조언을 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이어 "오늘(3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나중에 이야기하겠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란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지도자 암살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지난 1일 이스라엘을 향해 약 200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이란에 즉각 재보복을 천명하며 중동 정세를 둘러싼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전 세계 원유 공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중동에서 직접 충돌을 자제해 온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유가도 급등했다.
만약 이스라엘이 이란의 석유 시설을 공습할 경우 공급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시티그룹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격이 대규모로 이뤄질 경우 전 세계 원유 시장에서 하루 150만배럴의 공급이 줄어들 전망이다. 이란의 하루 원유 생산량 330만배럴의 절반 수준이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경우 원유 공급은 하루 30만~45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사태가 악화할 시 국제유가가 배럴당 적게는 10달러, 많게는 30달러가량 추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클리어뷰 에너지 파트너스는 이스라엘이 이란 정유시설 공격 시 12달러 뛸 것으로 봤다. 만약 이란이 주요 원유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유가가 배럴당 28달러 더 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경우 국제유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이후 다시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뛰게 된다.
시장에서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격화되면 유가 급등으로 최근 진정세인 인플레이션이 반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유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힘써 온 바이든·해리스 행정부에는 큰 부담이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유가 안정에 주력하고 있어 이스라엘이 미 정부에 부담을 줄 석유 시설을 직접 공격 목표로 삼을지는 불투명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유가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상승을 막기 위해 미국과 주요 산유국 등이 오일쇼크 가능성 차단에 주력하고 이스라엘도 이를 고려해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CIBC 프라이빗 웰스의 레베카 바빈 선임 에너지 트레이더는 "에너지 인프라를 잠재적 타깃으로 삼는다는 사실이 시장에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으로 이는 보다 현실에 근접하고 있다"며 "다만 선거가 다가오고 있어 이스라엘이 실제로 이란의 석유 시설을 공격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 역시 존재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