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진 우려에 한은 기준금리 2연속 전격인하
내년 성장률 1.9% 전망, 잠재성장률 이하 추정
트럼프 통상 불안, 수출 둔화 등 우려해 선제적 금리인하
한국은행이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2차례 연속 인하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도 미국 대선에 따른 관세부담 우려와 수출둔화 등 경기부진 가능성 커지면서 금리를 예상보다 빠르게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종전 2.1%에서 잠재성장률(2.0%)을 밑도는 1.9%로 하향조정했다.
한은, 시장 예상 깨고 기준금리 전격인하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28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00%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종전 3.25%에서 0.25%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를 제외한 6인의 금통위원 중 4인이 인하 의견을 제시했고, 장용성 위원과 유상대 위원 2인은 동결 소수의견을 냈다. 3개월 이후 금리전망(포워드가이던스)에 대해서 3인은 동결, 3인은 인하 의견이었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달 11일 기준금리를 연 3.50%에서 3.25%로 0.25%포인트 낮추며 3년 2개월 만에 피벗(pivot·정책 전환)에 나선 바 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이달에는 금리를 동결하고 지난달 금리인하의 효과를 지켜볼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였지만 한은은 2연속 금리인하를 선택했다. 한은의 입장변화는 지난 금통위 이후 시장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달 초 열린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승리하면서 향후 통상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내년에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면 우리 수출과 경제성장률을 크게 낮출 수 있어 한은이 선제적 인하에 나선 것이라는 평가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0월 기준금리 인하 이후 큰 변화가 있었다"며 "특히 미국 공화당이 대통령은 물론,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레드스윕은 예상을 넘어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3분기에 예상보다 수출 물량이 크게 줄기도 했다"며 "이는 일시적인 요인보다는 수출 경쟁 심화 등 구조적 요인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요인들이 이번 금리 인하의 결정적인 배경이라는 것이 이 총재의 설명이다.
실제로 한국의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은 0.1%로 예상치인 0.5%를 크게 밑돌았다. 그동안 우리 경제를 지탱했던 반도체와 자동차, 이차전지 등 주력품목의 수출 증가세가 둔화한 것이 원인이다. 문제는 한은 총재의 이야기처럼 이 같은 흐름이 구조적인 문제이며,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내년에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면 우리 수출과 경제성장률을 크게 낮추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본다. 국책연구원인 산업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보편적 관세(10~20%)가 실제로 부과되는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이 최대 14%(약 93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0.2%포인트 낮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미국이 중국은 물론, 세계 모든 국가와 관세 전쟁을 벌인다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최악의 경우 1.1%포인트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 1.9%로 하향, 저성장 우려
한은이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것도 이날 금리 인하의 배경으로 꼽힌다. 한은은 이날 수정경제전망에서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1%에서 1.9%로 내렸다. 1.9%는 한은이 추정하는 우리 잠재성장률인 2.0%에도 미달하는 수치로 한국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을 시사한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2.4%에서 2.2%로 하향조정하고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종전 2.1%에서 1.9%로 낮췄다.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이 한은이 제시한 1.9%에도 미달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관측을 내놓는 민간 연구기관들도 늘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1.8%로 전망했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한국 경제의 하방 리스크가 될 것"이라며 "수출 약화는 이미 올해 하반기 시작됐고 이에 따라 투자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모건스탠리도 내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7%로 제시했다. 모건스탠리는 내수 부진과 트럼프 관세 정책을 부정적으로 꼽았다. 노무라증권과 JP모건, 바클레이스, 씨티 등 다른 주요 투자은행(IB)들도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1%대 후반으로 낮춰잡았다.
손종칠 한국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투자도 위축되고 기준금리 인하 속도도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내년 우리 경제가 쉽지 않아 보인다"며 "국채 발행 등 정부의 개입없이 내년 경제성장률이 2.0%를 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금리인하 빨라 외환시장 불안 가능성
예상보다 빠른 금리인하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가장 큰 문제는 환율이다. 이달 초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원·달러 환율은 가파르게 뛰어 지난 13일 장중 1410원 선을 넘어 2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크게 내리지 않고 1390원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수 있고, 금리인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우려가 달러 강세를 불러왔고, 우리 외환시장에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하면서 달러 가치가 더 상승해 환율이 재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환율이 너무 뛰면 수입물가를 자극해 우리 경기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의 두 가지 목표인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 서로 다투고 있는 상황인데 현시점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환율"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총재는 환율 변동성은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율 변동성을 관리하는 데 외환보유고가 충분하다"며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액수를 확대하고 기간을 재연장하는 것을 논의 중인 것도 환율 변동성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리인하 신중론으로 돌아선 미국과의 엇박자도 우려된다.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 26일 공개한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 위원들은 향후 금리인하를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위원들은 미국 경제가 호조를 지속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중립금리’ 수준에 불확실성이 있는 점을 금리인하 속도조절의 근거로 내세웠다.
이 총재 역시 이날 "미국 기준금리가 빨리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전반적으로 미국 경제가 홀로 성장률이 높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느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총재는 차기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서는 "한은 총재로서 맡은바 업무에 충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