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나리기자
최근 레바논 전역에서 폭발한 무선 통신기(삐삐)에는 배터리 내부에 심은 폭발물이 작동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스라엘은 폭발물을 숨기는 '매우 정교한 기술'을 적용했다.
27일(현지시간) 미 CNN 방송 등은 다수의 레바논 고위 당국자들이 공격 당시 전원이 꺼져 있어 폭발을 피한 삐삐 기기들을 대상으로 한 폭파 실험 결과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레바논 보안 당국 소식통은 CNN에 "이스라엘이 삐삐의 배터리 안에 폭발물을 숨긴 방식이 너무 정교해서 사전에 탐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위 소식통은 자신이 직접 이스라엘이 개조한 삐삐 기기 한 대를 조사한 뒤 폭파 실험을 지켜봤다면서 "폭발물이 삐삐의 리튬 배터리 내부에 묶여 있어 사전에 발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션 무어하우스 전직 영국 육군 장교이자 폭발물 처리 전문가는 삐삐 배터리의 금속 케이스 내부에 전자 기폭 장치와 같은 작은 폭약을 심어둔다면 엑스레이(X-ray) 촬영 등으로는 발견하는 게 불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일을 조사한 여러 전문가도 삐삐 내부에 폭발 장치가 숨겨져 있었으며 이는 국가 차원에서 이뤄진 정교한 공급망 공격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추론하고 있다.
헤즈볼라와 이란은 공격 직후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했으며 레바논 당국도 초기 조사에서 삐삐가 레바논에 수입되기 전 이스라엘이 폭약을 설치했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런 '삐삐 폭탄' 수천 개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져 헤즈볼라에게 전달됐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발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헤즈볼라도 이번 삐삐 폭발 배후에 보복을 다짐하면서 폭탄 공급망 실체에 대한 내부 조사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수장은 전날 연설에서 "폭발과 관련해 우리는 거의 확실한 어떤 결론에 도달했지만 이를 확인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며 "기기를 판매한 회사부터 제조, 운송, 레바논 반입, 유통까지 폭발 순간까지 모든 과정이 철저한 조사 및 검토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7일 레바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해 레바논 보건당국 기준 4000여명의 사상자를 낳은 삐삐의 위탁 생산업체가 이스라엘이 수년 전 만들어 운영한 '껍데기 회사'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 대원들이 사용하던 삐삐는 대만 기업인 '골드 아폴로'의 상표가 부착돼 있었다. 그러나 '골드 아폴로' 측은 테러 직후 "유럽 제휴 업체에서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우리 브랜드를 붙인 것이며 우리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라고 밝혔다.
문제의 호출기가 제조된 공장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소재 'BAC'로 알려졌는데, 이 공장을 운영하던 주체가 이스라엘이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신은 BAC가 평소에는 일반 업체와 같이 주문을 받고 정상적인 제품을 제조했지만 헤즈볼라가 주문을 넣었을 때는 무선호출기의 배터리 표면에 강력한 폭발 물질인 PETN을 발라 제작한 것이라고 전했다. 또 앞서 헤즈볼라는 휴대전화가 이스라엘에 추적당하기 쉽다며 휴대폰 대신 무선호출기를 쓰도록 했는데 이 '소문' 자체를 퍼뜨린 주체도 이스라엘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