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송승섭기자
평생을 나비 연구에 몸 바쳤던 곤충학자 석주명 선생의 표본 120여점이 90여년 만에 한국 땅을 밟는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규슈대학교로부터 석주명 선생이 1930~1940년대에 한반도에서 수집한 곤충표본 120여점을 기증받는다고 24일 밝혔다.
1908년 태어난 석주명 선생은 한반도 전역에서 나비표본을 수집해 한반도 나비의 변이를 연구한 학자다. 1930년대 초부터 20여년간 전국을 다니며 나비 75만마리를 채집해 통계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같은 종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름이 붙은 나비가 844개나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석주명 선생은 일제 식민지 시기에도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일본과 조선의 전문학술지에 120여편에 달하는 논문을 냈다. 1939년에는 영국 왕립아시아학회에 ‘한국의 동종이명 나비 목록’이라는 저서를 출간해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해방 이후에는 우리말로 나비의 이름을 짓는 데 앞장섰다. 그가 직접 만들거나 정리한 한국산 나비만 248종에 이르는데, 1947년 조선생물학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정됐다. 각시멧노랑나비, 수풀알락팔랑나비 등 현재 불리는 나비 이름은 대부분 그가 순우리말로 지었다.
이후 석주명 선생의 나비표본은 서울 국립과학원에 15만여점 보관돼있었지만,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소실됐다. 그의 여동생인 석주선이 피난 때 가져온 32점의 나비표본만이 국가등록문화재 610호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상태다.
그런데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진은 지난 3월 일본 규슈대 연구실에 소장된 석주명의 표본 120여점을 최초로 확인했다. 당시 일본 곤충학자와 교류가 있었던 석주명이 기증 또는 교환 형태로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연구진들은 규슈대 측에 그의 표본이 국내 곤충학계에 차지하는 의미와 기증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설득해 국내 반입을 끌어냈다.
120여점의 표본에는 북한의 고산지역에서 채집된 차일봉지옥나비와 함경산뱀눈나비 등과 같은 희귀한 종도 포함돼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진은 규슈대 연구자들과 함께 모든 표본의 정보를 정리해 생물학 전문 학술지 ‘저널 오브 스피시즈 리서치’에 관련 논문을 투고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석주명 표본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특별 전시 및 학술회를 올해 11월에 개최할 계획이다.
서민환 국립생물자원관장은 “석주명 선생 표본 귀환의 의미는 역사적,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귀중한 표본을 다수 입수한 것이며, 이번 기증을 계기로 규슈대 곤충 연구자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