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에게 대포통장을 빌려주고, 통장에 들어온 도박 자금을 가로채는 범죄를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최근 도박자금을 가로챈 행위에 대해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죄’를 적용해 징역형의 유죄 선고를 받아내면서다. 지금까지는 대포통장을 판매한 혐의에 대해서만 처벌해 왔지만 대포통장을 판매한 뒤 도박 자금을 빼돌리는 통장 명의자에 대한 처벌도 강화하고, 불법 도박 자금을 몰수·추징할 선례가 생긴 것이다.
대구지검 강력범죄수사부(소창범 부장검사)는 최근 불법게임장 운영 송치사건에서 대포통장 유통조직을 밝혀 전자금융거래법위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총책 4명을 구속기소하고, 관련자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대구지법은 총책 4명에 대해서는 징역 2년 4개월, 징역 2년 등의 실형을 선고했다. 또 이들 4명의 불법 도박 범죄수익 8억 9501만 원을 추징했다. 불법 도박 운영에 쓰인 대포통장 계좌주의 속칭 ‘누르기’ 범죄에 유죄 선고가 내려진 첫 사례다. ‘누르기’란 대포 통장에 돈이 입금되면 몰래 돈을 가로채는 행위를 말한다.
이번 사건은 검찰이 불법 게임장 운영 송치사건을 보완수사하면서 드러났다. 게임장 운영자가 본인과 타인 명의 계좌 다수를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 판매한 것이 적발된 것. 계좌 명의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은 이들이 모두 20~30대의 대구·경북 거주자인 점, 계좌에 입금된 도박 자금이 비슷한 시기에 인출된 점 등을 수상히 여겨 수사를 진행했다. 추가 수사 결과, 이들은 조직적으로 대포통장을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에게 판매한 뒤 도박 자금이 들어오면 돈을 몰래 인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간 보이스피싱 범죄에선 대포통장 계좌주들의 ‘누르기’ 행위에 횡령죄를 적용해 처벌해 왔지만, 불법 도박 사건에선 같은 법리가 적용되지 않았다. 법원은 보이스피싱 대포통장에서 돈을 빼돌릴 경우, 피해자의 돈을 횡령한 것으로 봐 계좌주를 처벌했다. 반면 불법 도박의 경우, 도박사이트 이용자들이 대포통장에 입금 뒤 게임머니 등으로 환전받는다는 이유에서 횡령죄가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불법 도박에 대포통장을 제공한 계좌주들의 ‘누르기’ 범죄에 대한 처벌과 불법 도박 자금 환수가 어려웠다.
검찰은 법리 검토 끝에 대포통장 유통 조직원들에게 대포통장 판매 행위와 별도로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죄를 적용했다. 이들이 도박자금을 임의로 인출해 사용한 행위를 범죄수익 수수로 본 것이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제4조는 ‘그 정황을 알면서 범죄수익등을 수수(收受)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대구지법 김석수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다른 이들과 공모해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중대범죄인 도박공간개설 범죄행위에 의해 생긴 범죄수익 등을 수수했다”며 범죄수익은닉법 위반 혐의에 대한 유죄를 선고했다(2024고단271). 이후 기소된 조직원들에 대해서도 법원은 같은 논리로 판결했다(2023고단4628).
이번 사건 수사를 맡은 이희욱 당시 대구지검 강력범죄수사부(現 전주지검 형사2부) 검사는 “그간 불법 도박 관련 대포통장의 누르기 사건에서 횡령죄를 의율하기 어려워 다른 죄명을 적용하는 방안을 찾아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검찰청은 이번 사례를 전국지검에 알리고, 유사 사건에 적극적으로 이같은 법리를 적용할 방침이다.
임현경 법률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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