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 돌아간 한미약품 CEO 강등…모자 갈등 핵심된 '전문경영인 체제'

지주사, 한미약품 사장 전무로 강등
한미약품 "박재현 사장 체제 유지"
모녀, 임종훈 지주사 대표 교체 추진

한미약품의 모녀-형제간 경영권 쟁탈 3차전에 불이 붙었다.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임종훈 대표가 지난 28일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이사의 직급을 사장에서 전무로 강등하고 업무를 경영총괄에서 제조본부 담당으로 축소하자, 한미약품은 다음날 "한미사이언스가 별도 법인인 한미약품 대표이사 인사를 낸 것은 위법이며 무효"라며 "박 사장 체제를 변경 없이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주사와 주력 사업회사가 최고경영자 거취를 놓고 정면충돌한 것이다.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은 지난 1월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 '모녀'가 상속세 마련을 위해 OCI그룹과 통합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송 회장의 아들인 임종윤-종훈 '형제'가 이에 반발해 3월 28일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주총회 지분 대결에서 모녀 측에 승리해 경영권을 장악하면서 '1차전'에 승리했다. 이후 형제는 직접 경영권 장악에 나섰다. 동생 종훈이 모친을 축출하고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에 취임했고, 형 종윤은 우선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를 맡고 차후 한미약품 대표이사에 취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모녀는 정기주총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며 형제 편에 섰던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을 지난달 초 자신들 편으로 돌려세워 '3자연합'을 결성해 다수 지분을 확보, '2차전'에서 역전했다. 3자연합은 이어 그룹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30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3자연합은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을 위해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부터 외부 전문가로 교체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3자연합은 이를 위해 지난달 말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했으나, 형제 측이 1차전 승리 후 과반을 장악한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소집을 거부했다. 한미사이언스의 박 사장 강등 시도는 3자연합의 임종훈 대표 교체 시도에 대한 저항이라고 업계 관계자는 풀이했다. 박 사장은 송영숙 회장의 최측근이자 신약 연구개발을 총괄한 약학박사 전문경영인으로, 3자연합이 구상하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가족들이 분쟁 와중에 제약 전문성을 갖춘 경영진까지 흔드는 바람에 한미약품 연구개발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28일 지주사에서 박 사장 강등 인사를 내기 불과 1시간 전에 경영관리본부에 인사팀과 법무팀을 신설했는데, 이 조직을 그대로 운영하기로 했다. 한미약품은 지금까지 인사·법무 업무를 한미사이언스에 위탁하고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형제의 입김을 배제하고 박 사장 관장 아래 독자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뜻이다.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의 박 사장 강등 시도로 촉발한 '3차전'은 법적 대응이 쏟아지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사이언스는 박 사장 인사권 행사는 유효하다는 입장이어서 한미약품에 인사 이행 소송을 내는 것을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현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장악한 형제 측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신주발행, 전환사채(CB) 발행 등을 통한 상속세 납부자금 조달을 추진하고 있는데, 3자연합은 "이를 실행하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3자연합은 또 한미사이언스 이사회가 임시주총 소집을 계속 거부할 경우 법원에 임시주총 소집 허가 신청을 낼 방침이라고 30일 알려졌다. 한미약품그룹 경영진은 요건을 갖춘 주주들이 내는 임시주총 소집 허가 신청은 법원이 대체로 허가해준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 허가로 임시주총이 열리면 소액주주 표심 확보 대결이 다시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3자연합은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과반 회복을 위해 정원을 늘리기 원하는데 현재 3자연합의 지분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바이오중기벤처부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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