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환기자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이 다음 달부터 기준금리를 본격적으로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으면서 달러 약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2.2원 내린 1331.8원에 개장했다. 9시41분 기준으로는 개장가보다 소폭 오른 1333.9원에 거래 중이다.
원·달러 환율은 전일 주간거래에서 전 거래일 대비 23.6원 내린 1334.0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 3월21일 1322.4원을 기록한 이후 약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서만 30원가량 급락했다. 환율이 내려온 것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달러 약세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서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상대적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 지수는 전일 102까지 하락해 지난 1월5일(101.908) 이후 7개월여 만에 최저였다.
미국은 최근 물가 상승률이 다소 안정된 반면, 경제지표는 부진해 다음 달부터 기준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는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의 신규 주택 착공 건수는 전월 대비 6.8% 감소한 123만8000건(계절조정 후 연율 환산)으로 집계됐다. 이는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134만건)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의 7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46.8로 예상치를 밑돌았다.
반면 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2.9% 오르는 데 그쳤다. 시장 예상치인 3.0%를 하회했으며 2021년 3월 이후 가장 둔화한 수치기도 하다.
박상현 iM투자증권 전문위원은 "미국의 7월 물가지표 안도감과 함께 주택지표 부진 등 일부 실물지표 둔화로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달러 약세 압력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박 위원은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이번 주 잭슨홀 미팅에서 기준금리 인하와 관련된 강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감도 달러 약세를 이끄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높아지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 문제로 이달 기준금리 인하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원화강세의 원인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오는 22일 열리는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본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최근 수도권 집값 상승이나 가계부채 증가 문제 등으로 한은이 이달에는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의 경기상황도 살펴야 해서 우리나라는 오는 10월께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급격한 원·달러 환율 하락에 대해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수급요인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연초 이후 4조2000억원까지 누적됐던 외국인의 달러통화선물 롱포지션이 지난 14일부터 줄기 시작했다"며 "전일에만 롱포지션이 1조6000억원 가까이 청산되며 환율 급락을 야기했다"고 분석했다. 외인들의 원화에 대한 약세 베팅이 청산되는 과정에서 환율이 일시적으로 급락했다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당분간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이 9월에 이어 4분기에도 한두 차례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것으로 예상돼 달러 약세압력이 지속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시아경제가 지난주 경제전문가 9인을 대상으로 한 환율전망 설문조사에서 89%인 8명의 응답자가 올해 연말까지 원·달러 환율이 1350원 이하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이주원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연말로 갈수록 미국의 성장 모멘텀이 둔화하고 통화 완화(기준금리 인하) 정책이 부각되면서 달러 약세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라며 "원·달러 환율은 등락을 거듭하면서도 하향 안정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