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이제라도 'e커머스공제조합' 만들어야

티몬·위메프(티메프) 미정산 사태의 근원은 티메프 자금난이 아니다. 구영배 큐텐 대표가 티메프를 인수해 큐텐그룹 자금 조달과 매출 부풀리기 용도로 이용하다가 터진 금융사고가 본질이다. '구영배 사기·횡령 사건'(검찰 압수수색 영장 기재 혐의)이지 '티메프 사건'이 아니다. 티메프는 판매자·구매자와 더불어 구 대표의 또 다른 피해자다. 그러므로 재발 방지책을 e커머스 규제에서 찾는 건 적절한 어프로치가 아니다. 주 책임자는 정부다. 금융당국의 감독권을 강화하고 요주의 기업의 비정상적 자금 이동에 눈에 불을 켜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은 e커머스를 때리고 나섰다. 정부는 판매대금 에스크로(안전결제) 별도 관리 의무화, 전자지급 결제대행(PG) 겸업 금지 등 검토안을 쏟아냈다. 여야는 업계 관행상 30~60일이 보통인 오픈마켓 판매대금 정산주기를 5일, 14일로 단축하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e커머스기업의 일탈 예방은 당연하다. 그러나 가혹한 자금운용 규제는 e커머스산업 전체의 숨통을 끊는다. 판매대금을 활용한 영업현금흐름 창출이 e커머스의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이다. 오픈마켓 평균 14%선인 판매수수료만으로 자생 가능한 e커머스 기업은 없다. e커머스 스타트업 창업도 불가능하다. 이리되면 국내법 열외인 중국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의 한국 점령만 더 쉬워진다.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잡는다. 규제 강화가 판매자 부담으로 이어질 우려도 업계에서 나온다. 정산주기가 짧아지면 판매수수료율이 올라간다고 여러 오픈마켓에 입점한 생활용품 판매자는 걱정했다. 매출채권을 일찍 회수하는 대신 할인을 많이 해줘야 하는 셈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

PG 겸업 금지는 갈지자 행정의 전형이다. 티메프를 비롯한 e커머스의 PG사 등록은 애초 금융당국이 밀어붙였다. e커머스에 금융기관 자격을 부여해 전자금융거래법으로 감독하기 위해서다. 자신들이 감시를 소홀히 해놓고 PG 탓을 하면서 분리하면 앞으로 금융당국이 e커머스를 직접 들여다볼 근거가 사라진다. 실효성도 글쎄다. PG사를 자회사로 두고 나쁜 생각을 하면 막을 수 없다.

판·구매자를 보호하면서 e커머스 생태계는 위축시키지 않을 해법이 있다. 상조업체는 가입자 납입금을 장례 서비스 제공 시점까지 길면 수십 년 굴린다. 중도 폐업으로 돈을 떼이는 사고가 빈발하자, 공정거래위원회는 2010년 할부거래법에 근거해 상조업계에 한국상조공제조합을 설립시켰다. 다단계판매업계에도 방문판매법에 근거해 직접판매공제조합과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을 2002년 설립시켰다. 공제조합 설립 후 두 업계 소비자 불안이 크게 줄었다.

이 모델은 e커머스에 바로 적용 가능하다. 전자상거래법 제24조 10항은 '전자상거래를 하는 사업자 또는 통신판매업자는 소비자 보호를 위하여 공제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고 2002년 법 제정 당시 이미 규정했다. 정부와 업계가 손놓고 있었을 따름이다. 공제조합이 있었다면 티메프 피해는 어느 정도 보상 가능했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업계가 조합 설립에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

바이오중기벤처부 이동혁 기자 dong@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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